반려동물 안락사에서의 윤리

함께 고민하는 수의 윤리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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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선 교수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연구실

사례 1.

원장 수의사 A에게 12살 테리어 종의 똘이 안락사 의뢰가 접수되었다. 똘이의 보호자는 이 병원이 처음이다. 검사 전이지만 똘이는 배가 약간 부푼 것을 빼고는 양호해 보인다.

수의사 A가 안락사를 접수한 이유를 묻자, 보호자는 울면서 똘이가 쿠싱병(Cushing’s disease) 진단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전에 오랫동안 아프다 떠나보낸 반려동물에 대한 기억이 있는 보호자는 똘이의 상태가 계속 나빠지고 결국 고통스럽게 떠나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안락사를 원한다.1)

 

사례 2.

집중치료실 담당인 수의사 B는 17살 말티즈 순이를 돌보고 있다. 순이는 당뇨와 쿠싱병, 전립선 비대증, 중증의 치주염, 중증의 퇴행성 관절염과 비대칭성 십자인대파열로 인해 심각한 상황이다. 식욕이 전혀 없으며 움직일 수도 없다. 집중치료실에서 진통제와 수액, 비경구투여가 없다면 생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이다.

수의사 B는 보호자에게 순이의 안락사를 고려해 보도록 권고 했지만 보호자는 순이가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안락사를 거부하고 있다.2)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좋은 죽음, 즉 “안락사(Euthanasia)”를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에서, 평화롭게 죽음이 왔음을 받아들이고, 모든 일을 정리하는 온화한 종말로 표현했다.3)

물론, 현대 의학에서 안락사는 이와는 좀 다른 의미이다. 환자가 참을 수 없고 치유할 수 없는 고통에 놓여있을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의사를 표현한 경우, 의사가 환자의 생을 마감하도록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4)

그렇다면, 수의학에서 안락사는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거나 없애기 위해 인도적으로 동물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일컫는다. 방식에 따라서는 사람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성물질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숨을 멎게 하는 ‘적극적인 안락사’와 치료를 중단하거나 진정제를 과다하게 증가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수동적인 안락사’로 구분할 수 있다.

동물이 고통받지 않게 하기 위해 목숨을 끊는 일은 보호자에게도 수의사에게도 매우 부담스럽고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된다. 안락사는 수의사의 일상적인 의료 행위가 되어가고 있으며 최근 한 미국 수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N=249)에서 응답자의 39%가 1,000회 이상의 안락사를 진행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5)

수의사는 윤리적으로 안락사를 수행할 수 있을까?

  

윤리학자인 버나드 롤린(Bernard Rollin)은 동물의 안락사가 본질적으로 가치평가적이며 무엇보다도 윤리의 문제라고 말한다.6) 동물 안락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는 것이며 동물의 이익을 위해 행해져야만 한다.

수의윤리학자인 제임스 예이츠(James Yeates)는 ‘진정한 안락사’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7)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물을 죽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고통을 막을 수 없다고 해서 동물의 죽음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경우 우리는 동물의 죽음이 동물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물이 죽는 것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삶의 경험을 피할 길이 없으며 의학적인 치료가 오히려 비윤리적일 수 있는 상황은 안락사가 윤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어서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상황적으로 어떤 동물은 살아있다고 해도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사람을 물어 반려동물로서 부적합하다고 판단이 내려졌거나, 큰 수술이나 장기적으로 어려운 치료가 예상되거나, 부적절한 환경에 방치될 가능성이 큰 경우,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든 관계없이, 수의사는 안락사를 행함에 있어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라는 확신과 죄책감을 갖지 않을 상황이어야 한다.

안락사는 이를 요구하는 보호자에게도 어려운 경험이다. 보호자는 안락사에서 자발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동물환자를 대변하며 오랜 기간 맺어온 깊은 관계의 단절을 맞닥뜨려야 한다.

따라서 수의사는 보호자와 안락사에 대해 논의할 때 이들의 상황을 고려하고 배려해야할 의무가 있다. 또한, 보호자가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동물의 상태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

수의윤리학자인 탄넨바움은 안락사를 정당화할 수 있으려면 환자의 의학적인 상황과 더불어 보호자가 자발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고, 자신에게 임박한 슬픔이나 상실감을 넘어 동물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선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8)

반려동물의 임박한 죽음 앞에서 보호자는 이를 지켜보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인해 조속한 안락사를 원하거나, 반대로 동물학대에 준하는 심한 고통의 상태에서도 동물의 안락사 결정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수의사는 동물환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안락사 결정이 적기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호자와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보호자가 결정을 하는 동안 호스피스나 완화 치료를 통해 동물이 경험할 수 있는 위해를 줄여야 한다.

반려동물 안락사와 관련해서 수의사들이 처하게 되는 가장 빈번한 윤리적 딜레마는 동물보호자의 요구가 동물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이 되는 경우이다. 경제적인 제약으로 인해 치료를 택하지 않고 동물의 안락사를 요구받거나, 건강한 동물의 안락사를 요구받거나, 치료가 고통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안락사를 거부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럴 경우, 수의사는 안락사 요청에 응할 수도, 보호자를 설득하여 안락사를 진행할 수도, 안락사 요청을 거절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진료 상황에서 수의사들은 안락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미국과 영국 수의사회의 윤리강령에 따르면 수의사는 동물환자의 요구와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9) 즉, 보호자의 심리적, 경제적 안녕보다는 동물의 최선의 이익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2018년 미국 수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10)에서 수의사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에 어려움을 겪거나, 다른 치료 수단이 없어서 안락사를 해야 하는 경우를 윤리적인 딜레마라고 인식했다.

80%가 넘는 응답자는 이유나 상황에 관계없이 동물을 안락사 하는 것이 항상 윤리적일 수는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아님에도 수의사들이 회피수단으로 안락사를 이용한다는 문항에 45%가 동의했으며, 42%는 실제 자신이 이와 같은 안락사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2%는 수년간 1회, 32%는 1년간 수회의 안락사 요청을 거부했다. 안락사를 거부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락사를 행하지 않을 경우 보호자가 동물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더 고통스러운 방식을 적용할 것이 염려스럽거나, 보호자의 뜻을 무시하는데 따르는 부담, 보호자와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응답자의 57%는 수의사들이 보호자와 동물의 이익이 충돌할 때 보호자의 결정을 우선 시 한다고 답했다.

영국 수의사들의 안락사 거부에 대한 연구11)에서 응답자의 약 80%는 안락사 요구를 거부한 적이 있었다.

안락사를 거부한 경험이 있는 수의사들은 실제로 동물이 어리거나 건강하거나 고통받지 않았기 때문에, 재입양이나 치료, 행동 교정 같은 가능한 대안이 존재했기 때문에, 보호자가 혼란스럽고 안락사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적절하지 못한 상태라서, 보호자의 “편의를 위한 안락사(convenience euthanasia)”이기 때문에 안락사를 거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보호자의 상황이 치료를 수용할 수 없거나 안락사를 거부할 경우 동물에게 위해가 가해질 위험이 있을 때 안락사를 거부하지 않았다.

영국 수의사회 윤리강령에 따르면 수의사의 판단에 따라 안락사를 거부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일반적으로 수의사들은 동물 환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윤리적 판단을 따르며 죽음이 동물 환자의 이익에 반한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는 모든 수의사들에게 절대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것이 동물권과 같은 철학에 근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안락사 결정에 대한 압력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의 경우 안락사에 대한 폭 넓은 논의와 이를 근거로 한 제도적, 의학적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수의학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따라서 수의사는 별도로 안락사에 대한 논의의 장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수의과대학의 교육에서부터 이를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스트리아 수의사들의 안락사 경험에 대한 연구에서 수의사의 안락사 동의 여부는 동물과 보호자가 처한 맥락을 반영하여 결정되며, 함께 일하는 수의사의 수가 많을 수록 좀 더 소신 있게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수의사의 안락사 결정을 내리는데 동료들의 지원과 논의가 중요함을 강조했다.12)

    

사례 1은 동물의 이익이 아니라 보호자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한 전형적인 편의를 위한 안락사로 보일 수 있다.

보호자는 똘이가 쿠싱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인해 당황하고 슬픈 상황이다. 그래서 이 질병이 관리 가능하고 똘이의 현재 상태가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보호자의 안락사 요구를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안락사 결정을 거부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미 아픈 동물을 긴 간병 끝에 떠나보낸 적이 있는 보호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며, 질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견딜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는 질병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똘이의 치료와 마지막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편, 사례 2에서 수의사 B는 동물의 고통을 무시하고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계속하기를 원하는 보호자에 대한 고민이다. 수의사는 안락사가 아닌 집중 처치에 대해 동물복지 측면에서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집중치료를 중단할 경우 순이는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경우, 보호자가 주장하는 ‘자연스러운’ 죽음이 가진 고통에 대해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보호자가 순이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순이의 고통을 줄여줄 있는 호스피스 등의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수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받도록 하여 보호자가 순이의 상태를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한다.

*   *   *   *

안락사를 의료 행위의 선택의 범주에 두고 행한다는 것은 수의학이 가진 “축복”이기도 하고 “딜레마”이기도 하다.13)

동물과 보호자의 상황을 모두 고려하면서 동물에게 가장 최선의 방식을 찾는 것은 가벼울 수 없다. 그러나 수의사는 전적으로 안락사를 외면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보호자와 함께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안락사를 수행할 때 수의사의 일차적 임무는 동물의 이익에 부합하거나 동물복지 문제로 인해서만 죽음을 인도적으로 유도하여야 하고, 가능한 신속하고 고통 없이 인도적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14)

윤리적인 책임은 결정의 결과뿐 아니라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보다 인도적이고 전문적인 안락사에 대한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합의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의 윤리 라운드토론은 대한수의사회,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교실과의 협의에 따라 KVMA 대한수의사회에 게재된 원고를 전재한 코너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아래 QR코드나 바로가기(클릭)로 보내주세요-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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