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가하는 학회·높아지는 후원비에 경기불황까지..업체 부담 커진다

늘어나는 후원 요청에 부담 토로하는 업체 증가...진정한 상생방안 고민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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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 컨퍼런스·학회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수의학이 발전하고 개별 과목이 세분화되면서 학회·연구회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학회·세미나 후원 요청도 덩달아 늘어나면서 관련 업체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과도한 후원 요청에 따른 수의 관련 업체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개선된 점은 없고 오히려 학회가 늘어나고 있으며, 부스 참가비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동물병원 경기불황까지 겹쳐 업체를 더욱 힘들게 한다.

최근 사료회사,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에 있는 수의사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듣게 됐다. 이후 추가 취재를 거쳐 현재 수의 관련 업체가 갖는 어려움을 짚어본다.

국내 최대 수의학술대회인 서울수의임상컨퍼런스가 올해 2월 처음으로 춘계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매년 1회 개최되던 행사가 올해부터 2회로 늘어난 것이다.

이번 춘계 서수컨퍼런스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는 “업체 입장에서는 홍보 대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대상(주로 서울시수의사회원)으로 홍보하는 건데 횟수만 증가했다. 비용 부담만 늘어난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서울수의컨퍼런스라는 이름값을 믿고 참여했지만, 내년부터는 참가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집행부와의 관계 때문에 거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6월 29~30일에는 제7회 부산수의컨퍼런스가 열렸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한국수의안과연구회 세미나와 한국수의심장협회의 첫 번째 오프라인 심포지엄도 진행됐다. 한국수의심장협회의 경우, 2022년 부산광역시수의사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부산수의컨퍼런스를 공동주최했었지만, 올해는 같은 날 별도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양쪽에 모두 부스 후원을 한 업체도 있다. 부스 비용도 두 배 들었지만, 주말에 쉬지 못하는 직원 수도 많아졌다. 사람을 나눠서 한 팀은 서울, 한 팀은 부산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7년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경상도 지역의 큰 학술행사는 영남수의컨퍼런스 1개뿐이었다. 하지만, 컨퍼런스를 둘러싼 갈등으로 부산수의컨퍼런스가 생겨나면서, 업체로서는 졸지에 같은 지역에 후원해야 할 행사가 2개가 됐다.

과목별로 비슷한 학술단체가 2개 이상 존재하는 예도 있다. 대한수의피부과학회와 한국수의임상피부학회가 대표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학회나 연구회가 공부를 목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교수들의 알력 다툼이나 파워게임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올해도 지난 5월 대한특수동물의학회(KSEAM)가 창립했는데, 내부 갈등과 함께 비슷한 학술단체가 추가로 생길 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는 2024년 제23차 대전 아시아태평양수의사회 총회(FAVA 2024)가 한국에서 개최되면서 업체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메인후원 업체가 수억 원을 후원하기로 약속한 가운데, 상당수 업체가 서울수의컨퍼런스보다도 비싼 후원 금액을 요청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컨퍼런스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올해는 FAVA, 내년에는 FASAVA 콩그레스도 한국에서 열리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 그나마 FASAVA의 경우, KAHA컨퍼런스·영남수의컨퍼런스와 공동 개최되기 때문에 KAHA와 영컨에 후원하던 예산을 책정하면 되지만, FAVA는 갑자기 유치되면서 없는 예산을 짜내서 후원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동물용의약품 회사의 한국지사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FAVA2024 후원이 매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행사이기 때문에 글로벌 본사에 후원 금액을 함께 부담하자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해 곤란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글로벌 회사 한국지사 역시 회사의 아시아태평양 본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아 자체적으로 후원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회들도 힘든 점이 있다.

학술대회 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생기면서 점점 참가자 수가 줄어드는 학회도 많다.

또한, 학회 개최 날짜를 두고 갈등도 생긴다. 학술대회가 하도 많다 보니, 서로 먼저 날짜를 잡으려고 하고, 같은 날짜에 행사를 여는 단체에 연락해서 날짜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일도 벌어진다.

한 업체 소속 수의사는 “(학회·수의사회) 회장님들이 후원비용만 얘기하는데, 후원비가 끝이 아니”라며 “부스 설치·철거 비용도 상당하고, 나눠줘야 할 샘플·제품 비용도 크다. 장비나 제품을 학회가 열리는 지역까지 배송하는 것도 돈이 들고, 주말에 직원들이 쉬지 못하고 근무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1.5배 지급하거나 대체휴무를 줘야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비용”이라고 전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또다른 업체 관계자는 “컨퍼런스 경품도 회사에서 내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학부생 장학금이나 협회 임원진 상금까지 요청한다. 협회 이름으로 장학금·상을 주는데 왜 업체가 돈을 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컨퍼런스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보고 “학회 운영진에게 주고 싶으니 수량을 따로 빼놓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업체 관계자도 있었다.

후원을 많이 해도 매출만 잘 나오면 괜찮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동물병원 경기불황이 업체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의료기기회사 관계자는 “요즘 경기가 정말 좋지 않다. 동물병원에 장비 하나 팔기도 쉽지 않은데 후원 요청만 늘어나고 있어 힘들다”고 말했다.

컨퍼런스 주최 측에서 업체에 정말 감사함을 느끼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많다.

임원진이 후원 부스를 돌면서 인사를 하는 컨퍼런스도 있고, 감사패를 주는 학회도 있지만 진정으로 업체를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후원 요청을 할 때는 ‘관계 형성’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실제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수의사는 “관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후원을 하는데 그 관계가 협회 전체 회원과의 관계인 건지 회장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후원해도 협회·학회 전체 회원과의 관계 형성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원해 줘서 고맙다며 공식 식사 자리에 업체 관계자들을 초대해 놓고, 별도의 인사 시간도 주지 않는다. 그냥 업체끼리 따로 한 쪽에 앉아서 밥 먹다가 돌아간다”고 토로한 관계자도 있었다.

일부 수의학 컨퍼런스의 후원수익은 상당하다. 한 수의컨퍼런스의 지난해 컨퍼런스 전시부스·광고후원수입은 4억원 이상이다.

이처럼 많은 수입에 문제를 제기하는 회원도 있다. “협회에 수억 원의 후원금이 생겨봤자, 결국 업체는 동물병원 납품가를 올려 손해를 메꾸지 않겠냐”며 “결국 협회가 돈 벌고, 개별 회원들이 그 돈을 1/n로 부담하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업체로서는 후원비가 매출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연수교육 시간을 채우기 위해 출석만 하고 가거나 대리 출석을 하는 수의사들이 여전히 많고, 많은 컨퍼런스에서 수의사·수의대생들이 경품 추첨을 위해 잠깐 부스에 방문해 도장만 찍고 가기 때문에 제품을 충분히 소개할 환경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홍보 효율을 생각하면 웨비나가 컨퍼런스 부스 후원보다 수십 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업체가 주최하는 웨비나에는 보통 수백 명의 수의사가 신청하는데, 수의사 대부분이 나가지 않고 끝까지 강의를 듣는다고 한다. 반면 컨퍼런스의 경우 “5백명, 1천명, 1천 5백명이 등록했다고 하지만, 실제 그만큼 부스에 오지도 않고, 와도 도장만 찍고 가기 때문에 거의 홍보 효과가 없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펫푸드·펫케어 제품 유통시장에서 동물병원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학회·협회가 업체와의 상생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점점 더 많은 업체가 수의사의 손을 떠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회사 내에 소비자 대상 제품과 동물병원 전용 제품이 있는데, 동물병원 전용 제품의 홍보·마케팅·후원 비용이 10배 정도 더 든다. 그런데, 수익은 소비자 대상 제품이 압도적이다. 수의사들에게 그렇게 큰 비용을 쏟아부으면서까지 동물병원 전용 제품군을 유지해야 하냐는 회사 내부의 의견이 나온다”.

대한수의사회가 강력한 권한으로 학회를 통합해서 한 번에 개최하면 좋겠다던 업계 수의사가 수년 전에 한 말이다.

수년이 지났지만 학회·컨퍼런스는 더욱 많아졌고, 함께 발전하겠다며 수의사 시장에 남아있는 업체를 짜내는 상황은 더욱 심해졌다.

동물병원 전용 제품을 유통하다가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B2C로 반려동물 제품 생산·판매를 주로 하는 한 업체 대표(수의사)는 “(B2B에서 B2C로 정책을 바꾼 뒤) 매출이 훨씬 많이 늘었고, 수의사 회장·임원진의 갑질을 당하지 않아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다”며 “지금처럼 협회·학회가 업체와 상생할 생각 없이 매년 돈을 얼마나 더 뜯어낼지 고민만 하면, 업체는 계속 수의사를 떠날 것이고 동물병원 전용 제품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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