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소개 브로슈어에 왜 우리 동물병원 환자 사진이?
A업체, 제품 홍보 브로슈어에 동물병원 블로그 사진 무단 도용 논란
최근 신규업체들의 반려동물 의료시장 진출이 활발한 가운데, 한 업체가 동물병원 블로그에 게재된 환자 사진을 제품 브로슈어에 무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제품을 사용한 적도 없는 동물환자들이었다.
동물병원 저작물의 저작권 보호와 반려동물의료시장에 대한 업계 전반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마루동물병원, 업체 브로슈어에서 환자 사진 우연히 발견하고 문제 제기
변호사 “저작권법 및 표시광고법 위반행위로 판단”
해마루동물병원은 올해 4월, 업체 A로부터 제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해마루동물병원은 매주 금요일 내과 수의사들이 모여 세미나를 하는데, 5월 10일(금) 세미나에서 A업체 관계자가 내과 수의사들을 상대로 제품을 소개했다.
이후, 해마루동물병원은 A업체에게 제품에 대한 근거자료를 추가로 요청했다. 해당 제품이 정말 반려동물에 효과가 있는지, 환자 사용 시 주의할 점은 없는지 더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A업체는 9월경 제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해마루동물병원에 제품 소개 브로슈어를 제공했다. 브로슈어에는 2페이지에 걸쳐 ‘제품의 치료 경과’를 before/after 사진이 있었는데, 여기에 해당 제품을 쓰지도 않은 해마루동물병원 환자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해마루동물병원 블로그에 2023년 2월 1일에 게재된 케이스 사진으로, 반려견 발바닥에 생긴 형질세포종양(Plasma Cell Tumor)을 전침항암요법으로 치료한 사례였다. A업체는 해당 사진 하단에 있는 해마루동물병원 로고를 잘라내고 브로슈어에 사용했다. A업체 제품을 쓰지도 않은 환자였다.
A업체가 병원 로고를 잘라내고 환자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을 알아낸 해마루동물병원 측은 업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동시에 변호사의 자문을 받았다.
법무법인 인의 추승우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례를 비추어 볼 때, 해마루동물병원이 치료 후 블로그에 올린 사진은 동물병원이 직접 진행한 치료의 전후를 비교한 사진으로 동물병원의 저작물로 볼 수 있으며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저작권법에 따라, 저작권을 침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에, 사진 무단 도용 행위는 그 자체로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에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는 게 변호사의 판단이었다.
표시광고법(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소지도 있다.
추승우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례를 비추어 볼 때, A업체는 브로슈어를 통해 업체의 제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업체의 제품이 적용되지 않고 치료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업체의 제품을 적용하여 상태가 호전된 것처럼 해마루동물병원의 치료 전후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바, 이는 사실과 다르게 표시·광고한 것으로 보통의 주의력을 가진 일반 소비자들이 광고를 보고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충분히 있는 거짓 표시·광고 행위임이 명백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는 시정조치, 과징금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으며, 표시광고법 위반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도 배상해야 한다.
해마루뿐 아니라 라퓨클레르 동물피부클리닉 환자 사진도 도용
업체의 사과 및 브로슈어 수거·폐기로 사건 일단락
심지어 A업체 브로슈어에는 해마루동물병원뿐 아니라 라퓨클레르 동물피부클리닉의 환자 사진도 2장이나 무단 도용됐다.
라퓨클레르의 반려견 등 부위 탈모 증상 개선 before/after 사진, 고양이 아토피 환자 치료 전후 사진을 일부 잘라내고 사용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A업체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은 환자들이었으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찾아지는 사진이다.
라퓨클레르 동물피부클리닉 이태현 원장은 “요즘 수의뿐만 아니라 사람 피부과에서도 피부 재생 및 탈모 개선에 효과가 있는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관련 제품의 품질 및 광고에 대해 병원 차원의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A업체는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해마루동물병원도 직접 찾아갔다.
A업체 대표는 “해당 브로슈어는 100부 정도 제작했다. 직접 방문하는 동물병원에 설명을 도와주기 위한 브로슈어인데, 효과가 잘 나타난 사진을 구하기 어려워서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서 넣었었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브로슈어를 전부 회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회사 제품을 통해 실제 효과를 본 케이스들이 많아져서 해당 사진으로 브로슈어를 전부 업데이트해서 제작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마루반려동물의료재단 김소현 이사장은 “업체에서 제품을 소개하고 싶다고 미팅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충분한 근거 없이 사람에서 효과가 좋으니 반려동물 쪽에도 써보게 하고 싶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만큼 반려동물의료시장을 쉽게 보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소현 이사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업계가 전반적으로 동물병원 저작물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길 바라고, 반려동물 의료시장에서 쉽게 사업을 해보려는 분위기가 줄어들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