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보조하는 동물들, 그들을 위한 윤리적인 생각들

함께 고민하는 수의 윤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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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수의사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 연구실(박사수료)

[사례]

수의사 A의 병원에 동물 훈련사가 파트너 개 ‘바람이’의 진료를 예약했다. 바람이와 함께 방문한 훈련사는 “가벼운 설사 증상 외에 특별한 문제는 없으며, 다행히도 바람이가 활기차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검사를 진행하던 중 훈련사는 자신이 일하는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효과와 장점에 대해 소개하며,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좋아 새롭게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훈련사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자문수의사로 참여하여 개들을 주기적으로 검사해줄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동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활동을 돕는다. 소방서, 경찰청, 관세청, 군대 등 국가기관에서 일하기도 하고, 청력이나 시력 소실 등 신체적 장애나 정서적 증세가 있는 이들을 돕기도 한다.

동물과 함께하는 활동이 인간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거나,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거나, 생리적 문제 개선에 유의미한 도움을 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1) 동물은 학생들의 학습을 도와 주의력과 학습능력을 증진시키거나, 노인들의 외로움이나 우울증 문제를 개선하는데 참여하고 있다.

병원, 학교, 요양원, 정부기관 등에서도 환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 치료에 직접적인 효과를 보이는 ‘동물매개치료(Animal assisted therapy)’에 관심을 갖고 도입하고 있다.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참여자 주변인들에게 잠재적인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동물매개활동(Animal Assisted Intervention2))의 유익함은 더욱더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서 수의사는 주로 동물의 건강을 관리하면서 동물의 질병이 인간에게 전파되거나 동물이 질병의 매개체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며, 동물행동, 동물복지, 인간-동물 유대에 대한 지식을 겸비한 전문가로서 역할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3)

미국수의사회(AVMA)에서는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옹호자이자 인수공통 전염병 전파를 막는 중요한 전문가로서 수의사가 동물매개활동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프로그램 구성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독려한다.4)

이번 칼럼에서는 동물매개활동에서 논의되어야 할 윤리적 문제들을 확인하고, 수의사의 역할을 고찰하고자 한다.

    

동물매개활동이 단순히 인간이 동물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것에 그친다면, 인간-동물 유대(Human-Animal Bond)에 근거한 동물매개활동이 관심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유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동물의 활동에서 동물들도 환경적, 정서적 이득을 얻기도 한다.5) 수의윤리학자인 탄넨바움은 인간-동물 유대가 다음의 특징을 가진 관계를 의미한다고 보았다.6)

-가끔, 우발적(sporadic or accidental)이 아닌 지속적일 것(continuous and ongoing)

-양쪽에 상당한 이익(significant benefit of both parties)을 주며, 생활의 관점에서 유익할 것

-자율적인 상태에서 맺은 관계일 것(in some sense be voluntary)

-양방향이 서로를 배려하고 이익을 주고 받을 것(bidirectional)

-상대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권리를 인정하면서 존경과 이익(respect and benefit)을 줄 것

인간-동물 유대는 동물의료에서 주인과 동물 사이, 인간과 동물의 이익의 균형, 동물의 도덕적 지위 등을 논의하는데 있어 중요한 개념이다. 적어도 인간-동물 유대를 강조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인간과 동물 간 양방향 관계에 주목하고, 양측이 얻는 혜택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물매개활동 관련 연구와 산업계는 인간이 얻는 혜택을 중심으로 논의하며, 동물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19년 농촌진흥청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관련 기관들이 동물보조프로그램을 도입한 이유는 인간의 치유효과에 대한 기대(40%), 인간의 선호(28%), 다양한 프로그램 시도(20%),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호기심(8%), 향후 장래성에 대한 기대(4%) 때문이다.

동물매개활동 프로그램의 효과에 관한 연구에서도 연구자들은 프로그램에서 인간 참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전 연구 윤리 승인(Institutional Review Board, IRB)에는 신경썼지만, 대부분 동물실험 윤리 승인(Institutional Animal Care and Use Committee, IACUC)을 받지 않거나 누락했다.

이는 동물의 이익이나 윤리적 보호에 대해 무관심한 상황을 반증한다.7) 인간-동물 유대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이익을 실용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은 윤리적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조동물에게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동물매개활동의 환경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대체로 훈련사-보조동물-서비스 이용자가 동물매개활동을 구성하며, 주로 개가 이용된다. 각 행위자 간 관계에 대한 이해에 따라 수의사가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는 달라질 수 있다.

① 개와 인간이 맺는 관계

동물매개활동이 점차 특수한 목적을 띄게 되면서, 개들은 대체로 어릴 때부터 기관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고 양성되며, 지정된 훈련사와의 관계에서 일하게 된다.

보호자가 봉사 차원에서 자신의 개와 함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일부의 경우, 보호소의 개들이 입양활성을 위한 사회활동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활동에 참여하는 개는 집(보호소, 훈련사나 보호자의 집)과 일터에서 맡겨진 업무와 집중해야 하는 대상이 달라져 혼란스러울 수 있다.

종종 장기간 유대를 맺은 훈련사가 이직하거나, 더 적절한 개를 담당해야 하는 이유 등으로 교체되어 훈련사와의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안내견이나 정서지원 동물은 도움이 필요한 고객의 집에서 거주해야 하고, 고객의 상황에 따라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이 경우, 반려동물이 자신의 보호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과 달리 유대감의 형성과 상실이 반복될 수 있으며, 이는 동물복지의 잠재적 손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② 프로그램 구성원의 전문성

활동에 참여하는 개는 변화하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으며, 반갑지 않거나 불쾌한 상황을 피하거나 도망칠 수 없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개들은 대체로 신체적, 행동적으로 높은 요구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부상, 건강 악화, 부적절한 대우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사례들이 보고되기도 한다.

보다 높은 수준의 건강 관리를 위한 모니터링,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이다.8)

동물복지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통제된 실험적 조건하에서 동물복지 손상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제 현장에서 복지가 보장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과 함께 일하는 이들이 동물복지 구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를 위해, 훈련사는 자신과 함께하는 개별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적 요구를 이해해야 하며, 동물의 상태 변화가 감지된다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 증상이 확인되기 전에 활동을 종료할 수 있을 만큼 동물의 행동에 대한 민감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로 구성된 조직이라면 더 나은 환경을 개에게 제공할 수 있다.

동물의 건강과 복지 증진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고객의 복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인간 의료 및 관련 전문가와의 협업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③ 적절한 지침 설정 및 준수여부

보조활동에 이용되는 개와 반려견의 주된 차이는 개가 일정기간 동안 노동을 한다는 것이다.9) 개의 노동은 불규칙하고 드물게 이루어지는 활동일 수도 있고, 하루 중 중요한 일정일 수도 있다.

미국수의사회(AVMA)의 관련 가이드라인은 동물매개활동 시 작업 강도와 휴식 제공 여부, 활동을 피할 조용한 장소, 주기적인 놀이시간이 제공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10)

안내견과 같이 작업 현장에서 거주하는 경우, 일과 생활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 경우, 현장을 편안한 집으로 느낄만한 환경인지 확인해야 한다.

함께 일하는 훈련사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훈련사가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동기가 강하거나, 개의 활동이 자신의 수익과 직결된다면 일의 빈도나 기간을 증가시킬 우려가 발생할 수 있으며, 개의 미묘한 행동 신호를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속도로 일의 강도를 늦출 것인지, 소위 ‘은퇴’ 과정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혹여, 일의 수요가 줄어들거나, 개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다른 동물이 채용되어 활동 중지가 결정된다면, 개는 더 이상 함께 일하러 나가지 않는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워하거나, 심한 경우 분리불안을 겪을 수도 있다.

적절한 지침은 개의 채용부터 은퇴, 은퇴 이후의 삶까지도 반영하여 만들어져야 하며, 준수 여부를 점검할 장치까지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처럼, 매개활동에 참여하는 동물을 일하는 도구가 아닌, 동물의 전체 삶의 기간에 걸쳐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생각할 때 비로소 윤리적 프로그램의 첫 단계에 돌입했다고 말할 수 있다.

롤링(Rawlings)은 동물보조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데 있어, 다음의 윤리적 사항들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동물이 자유롭게 환경을 선택했는가? 선택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자연스러운 행동을 표현할 자유를 제공받았는가?

-동물매개활동에 대한 검증된 기관의 지침이 있는가? 그에 따라 감독할 수 있는가?

-동물의 책임자가 학대하거나, 동물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방치할 위험은 없는가?

-의미 있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활동인가?

-의도는 좋지만 비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활동은 아닌가?

-동물의 정신적 복지 증진에도 관심을 두는가?

-산업화로 인한 이해상충은 없는가?

-견고한 근거에 따라 설계된 프로그램인가? 근거는 충분히 투명하게 공개되었는가?

   

바람이는 어떤 상태일까? 바람이가 무른 변을 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동물의 설사의 원인을 찾기 위해 병리학적 검사들을 진행하는 것부터 떠오를 것이다. 병인체를 확인하는 것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 놓인 동물이 환자로 왔다면, 단순히 질병의 원인체를 찾고 치료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예약을 받은 수의사는 상담이 길어질 것을 예상해야 한다. 훈련사가 내원하기 전, 바람이의 선발과정을 비롯해 현재 거주지, 활동지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오도록 준비시킬 수 있다.

진료실에서는 동물의 증상은 물론 동물이 참여하는 일의 종류와 목적, 업무에 적절한 동물인지 여부, 훈련사와의 관계, 동물에게 요구되는 것을 알아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동물매개활동 프로그램 구성과 동물이용지침, 수의학적 관리 방안, 은퇴를 위한 평가와 계획 등에 대한 인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움이 된다.

동물이 아픈 경우 일하지 않는지 확인하고, 동물복지 뿐 아니라 서비스 이용자들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사항임을 강조해야 한다. 가벼운 증상일지라도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에게는 위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 종료 후, 수의사는 바람이가 참여하는 활동 환경과 진료내역을 함께 보관하고, 바람이의 상태 개선을 위해 훈련사가 할 일들을 명확하게 안내하고 재방문 시 수행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만약, 바람이의 일-생활 환경, 건강과 안전에 대해 준비된 자료가 부족하다면 개선할 것을 권고하고,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수의사가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면, 기존 시스템을 먼저 분석하고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방법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신이 동물매개활동의 특수성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가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게 인간의 욕구가 다른 종의 욕구에 우선한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동물은 음식, 의복, 노동, 의료, 오락, 동반자 등 인간의 목적에 따라 존재해왔고, 역사 안에서 인간-동물관계는 인간의 우월성과 지배성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과 동물이 동일한 도덕적 지위를 가지며, 동물이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고 믿는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목적 안에서 동물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복지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동물이용(utilization with welfare safeguards model)’을 전제하여 ‘이용(use)’되는 동물의 ‘이익(benefit)’을 생각해야 한다.12)

특히 인간-동물 유대를 강조하는 동물매개활동이 보다 정당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인간이 얻는 이익과 동등한 위치에 동물복지를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의사는 동물매개활동의 윤리적, 물리적, 의학적 환경을 모두 이해하고 이에 참여하는 동물의 상태를 분석하고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수의 윤리 라운드토론은 대한수의사회,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교실과의 협의에 따라 KVMA 대한수의사회에 게재된 원고를 전재한 코너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아래 QR코드나 바로가기(클릭)로 보내주세요-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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