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스토리:안내견학교장이 되기까지] 국내 유일무이한 안내견들의 아빠,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박태진 교장
우리는 살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먼저 경험해본 사람의 의견을 듣곤 합니다. 누군가가 걸어간 발자취는 다른 누군가의 앞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1기는 데일리벳의 좋은 영향력을 살릴 수 있도록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벳스토리: OOO이 되기까지]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벳스토리 프로젝트에서 11기 학생기자단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그 15번째 주인공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박태진 교장입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기업이 운영하는 세계유일의 안내견 양성 기관으로, 1994년 첫 안내견을 배출한 이래 매년 15두 안팎의 안내견을 시각장애인에게 무상으로 분양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박태진이라고 합니다. 건국대학교 수의학과 93학번으로 입학했고, 99년도에 졸업했습니다. 여기서 일한 지는 20년이 조금 넘었네요.
안내견학교에서 수의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학부생 시절,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우연히 제 앞에 안내견과 시각장애인 분이 앉아있었어요. 그때 당시는 국내에 안내견이 10마리도 없었을 때였을 겁니다.
처음 보는 리트리버라는 개가 ‘맹인 안내견’이라는 마크를 달고 시각장애인의 다리 사이에 엎드리고 있는 모습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리트리버가 시각장애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당시엔 안내견이라는 개념도 채 정립이 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더 놀랐던 것 같아요.
안내견에 대해, 리트리버에 대해 궁금했지만 숫기가 없어 물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때마침 이분이 내리시는 걸 보고, 저도 충동적으로 따라 내렸어요. 시각장애인이신 분이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걷는지, 어떻게 계단을 오르며 에스컬레이터를 타는지 궁금했거든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 멋지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런 분야에서 일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막연하게는 임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도 임상을 하려면 기본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일단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취직을 했죠. 직장을 다니고 있던 어느 날, 모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안내견 학교 채용공고가 올라왔는데 관심이 있냐는 교수님의 연락이었죠.
당연히 생각했던 분야였기에 바로 입사 시험을 보겠다고 했고, 이때부터 진료수의사로 근무하기 시작했어요. 이후에는 현장 업무에도 관심이 생겨 본격적으로 훈련사로서의 커리어를 쌓으며 지금의 자리까지 왔어요.
안내견학교 수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했던 것이 있다면
안내견학교 수의사가 위해 특별하게 준비를 했다기 보다는, 기업체 취직에 관심이 있었기에 영어 공부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과하고도 경쟁을 해야 하니까요(웃음).
안내견학교의 훈련사와 수의사가 각각 하는 일이 궁금합니다
안내견학교 훈련사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개와 보호자를 모두 교육하는 사람이에요.
겉보기에는 안내견으로 양성하기 위해 개를 훈련시키는 업무가 다일 것 같지만, 사실 그 실상은 다르죠. 훈련사의 전체 업무 중 개 훈련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도 안되는 것 같아요.
안내견학교의 운영 목적은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돕는 장애인 보조견을 양성해서, 그분들에게 기증을 하고 그분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것이에요.
그렇기에 개를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각장애인이 개와 잘 지낼 수 있도록 이분들을 교육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사후 관리를 하는 등 사람을 교육하는 일도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안내견 훈련사는 개를 훈련하는 전문가이자 시각장애인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에요.
안내견학교 수의사는 신생자견, 퍼피워킹 중인 자견, 훈련견, 활동 중인 안내견, 은퇴견, 부모견을 대상으로 일반적인 임상 수의 업무(예방접종, 진단, 치료, 건강검진 등)를 진행하고 있어요.
또한 동결정액을 활용한 인공수정을 통해 기질과 혈통이 검증된 부견으로부터 강아지가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이 양성되기 까지의 과정을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안내견학교 내 강아지들은 안내견의 기질과 혈통이 검증된 부견과 모견 사이에서 태어나요. 보통 1년에 60~70여 마리가 태어나게 되는데, 생후 8주가 지나면 안내견 후보 강아지를 가정에서 1년간 돌보는 ‘퍼피워킹(puppy walking)’을 진행하게 되죠.
퍼피워킹은 사회화 훈련의 일종으로, 집안 내 생활습관을 익히고 대중교통, 편의시설 등의 다양한 장소에서 사회경험을 학습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안내견 후보 강아지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은 퍼피워커 분들께서 수고해주고 계세요.
1년 간의 퍼피워킹을 마치면 다시 안내견학교로 돌아와 본격적인 안내견훈련을 받습니다. 보통 6~8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그 과정에서 반려견으로서의 기질이 좀 더 보이는 아이들은 일반 가정에 분양이 돼요.
훈련을 성공적으로 이수하여 안내견이 된 아이들은 시각장애인 파트너를 매칭받게 됩니다. 파트너의 성격, 직업, 걸음걸이, 건강상태, 생활환경 등에 따라 파트너와 가장 적합한 안내견을 매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안내견과 파트너가 매칭되었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닙니다. 선천성 시각장애인 같은 분들은 한 번도 개를 보거나 만져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칭 이후 첫 1~2주 동안은 안내견학교에 파트너도 입소하여 안내견의 일반 관리를 위한 기초교육을 받아요. 안내견을 씻기는 법, 양치질 시켜주는 법, 칭찬하는 법, 배변한 것을 직접 치우는 법 등 아주 세세하게 교육하고 있어요. 나머지 2주는 시각장애인의 생활반경을 중심으로 현지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후 약 6~8년 동안 안내견으로 활동을 하게 되고, 안내견 생활을 마친 은퇴견은 일반 가정으로 위탁되어 남은 여생을 보냅니다.
안내견학교에서 근무하며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꼽아 본다면
하나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매일매일 보람찬 것 같아요. 일을 하다 보면 일의 의미와 보람이 바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 곳에서의 일들은 의미를 명백히 찾을 수 있어서, 여기서 일을 할 수 있는 제가 굉장히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일이 시각장애인의 삶을 서포트해줄 수 있고, 동시에 생명체를 태어나게 해서 사회에서 사랑받을 수 있게 양육할 수 있으니까요.
안내견이 되어도, 안내견이 되지 않아도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사람을 교육하고 모두의 행복을 기를 수 있다는 게 참 뿌듯한 일인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안내견이 있나요
올해가 안내견 학교 설립 이후 안내견 300마리를 누적 분양하는 해인데요, 모든 아이들이 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친구들이라 한 마리만 꼽기가 어렵네요(웃음).
설사 안내견이 되지 않아도, 가정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저희가 오랜 시간 가족을 교육하고 아이를 케어했던 만큼 다 소중합니다.
국회에 출입하는 안내견 ‘조이’, 윤석열 대통령의 은퇴견 ‘새롬이’ 입양, ‘유 퀴즈 온 더 블럭’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신규돌 훈련사 출연 등 매체에서 안내견에 대한 여러 사례가 소개되고,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까요?
아직까지 안내견하면 ‘본능을 억제한다, 삶을 희생한다, 스트레스를 받아 불쌍하다, 일찍 죽는다’ 이런 생각들이 보편적인 것 같아요. 지하철에서 엎드려 쪽잠을 자는 듯한 안내견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졸까‘라는 생각도 많이 하시죠.
안내견에 대해 안쓰럽게 생각해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너무나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내견의 생애를 따라가보면, 안내견은 늘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태어나서는 안내견학교 훈련사들의 케어를, 퍼피워킹 기간에는 퍼피워커의 케어를, 안내견 활동 기간에는 안내견 파트너의 케어를 받고, 은퇴견이 되어서는 반려견으로서 일반 가정에 분양되니까요.
저희는 안내견 양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안내견으로서의 삶이 기질과 맞는 아이는 안내견으로, 맞지 않는 아이는 반려견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안내견으로서의 양성 유무는 철저히 그 아이의 판단을 존중하는 겁니다.
때문에 안내견은 자신의 기질에 맞게 본능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에요. 지하철에서 쪽잠을 자는 것도 사람처럼 피곤해서 자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이 편안하고 안정된 상황이라고 인식해서 자는 거죠. 개를 포함한 어떤 동물도 지금 이 공간이 불안하고 두려우면 절대 잠들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관점에서 봐주시지 않았으면 해요.
안내견 파트너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면 좋겠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내견의 엄연한 보호자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이 정말 속상합니다. 장애 유무로 좋은 보호자인지를 구별하지 말아주세요. 안내견을 충분히 케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면 안내견에게는 누구보다 좋은 보호자입니다.
데일리벳 독자분들 중 대부분은 수의대생이거나 수의사이실텐데, 사회적으로 동물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인만큼 안내견, 나아가 특수목적견의 삶을 ‘힘듦’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개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요소를 충족시켜주는 환경에서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지난해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룬 성과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앞으로의 30년을 내다보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안내견학교가 만들어지기 전,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개가 장애인을 도울 수 있다’는 개념 자체도 없었어요. 개가 사람을 돕는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대한민국 사회에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고 정착시켰다고 생각해요.
현재 세계 각국에는 99개(34개국)의 안내견 양성기관이 있습니다. 안내견 문화가 없는 데가 훨씬 많죠. 아시아 국가만 해도 더욱 적은 편이고요.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지난 30년은 안내견학교 정착을 위한 질적인 노력을 많이 했고 이루어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30년은 양적인 발전을 하고 싶어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데에 안내견학교가 어떤 모습을 그려야할지 고민하고, 인력과 학교 규모를 키워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서포트하고 싶어요.
벳스토리 공통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의 히스토리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엇일까요?
저는 “현재를 즐긴다“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안내견학교에서 일하며 리트리버라는 품종과 아주 오래 살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이 아이들에게는 현재가 중요한 것 같더라구요.
저는 원래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많은 편인데, 여기서 리트리버와 함께 일을 하며 현재를 즐기고자 노력해오고 있어요.
선생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수의사나 수의대생인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워낙 훌륭한 후배님들이어서 조언을 하기가 부끄럽네요(웃음). 그럼에도 얘기를 해보자면, 본인이 관심있는 분야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면 좋겠어요. 저 역시도 주어진 것에 그저 열심히 살았던 거고, 이 분야의 존재를 인지한 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기회가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간의 관심과 노력은 나의 삶에 다른 부분에서라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요?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던 후배분들을 응원하겠습니다.
이가은 기자 vet_g_8113@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