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5년’ 국내 반려동물 방사선치료의 현재와 미래
‘방사선치료 인식·저변 커졌다’ 정밀의료·인공지능으로 변화 모색..안전·품질보증 기반 다져야
국내 반려동물 임상에 방사선치료가 도입된지 만5년이 됐다. 방사선치료기를 도입한 동물병원이 5곳으로 증가했고, 별도의 컨퍼런스가 마련될 정도로 저변이 넓어졌다.
반려동물 암환자의 방사선치료 수요도 커졌다. 쉼 없이 방사선치료기가 돌아가고, 주별로 신환을 제한할 정도로 붐빈다. 앞으로는 반려동물 방사선치료에도 정밀의료, 인공지능(AI)이 도입되면서 치료 효율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아직 선행주자가 자리를 잡는 시기인만큼 방사선치료의 안전성과 품질보증, 의학물리학적 역량 강화 등 기반을 단단히 다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수의영상의학회(회장 최수영)는 12월 1일(일) 서울 유한양행 본사에서 제1회 수의방사선치료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첫 컨퍼런스임에도 15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모여 큰 관심을 보였다.
수술·항암과 함께 주요한 암 치료 옵션
장기보존적 치료로 삶의질 개선
동물에서 쓰이는 것을 포함해 통상적인 방사선치료기는 선형가속기다. 전자를 가속해 발생시킨 X선을 목표부위(암조직)에 조사한다. 사람의료에서는 전자에 비해 심부의 목표부위만 타격하고 주변의 부작용을 줄이는데 적합한 양성자, 나아가 중입자까지 활용하고 있다.
방사선치료기가 조사한 X선은 암세포의 DNA를 파괴한다. 이 과정에는 산소가 요구된다. 때문에 암조직 중에서도 혈액공급이 원활한 암세포에 더 민감하게 작용한다.
방사선치료는 분할치료가 기본이다. 여러 번으로 나누어 방사선 조사를 반복한다. 부작용은 줄이면서 암조직을 최대한 파괴하기 위해서다.
이날 컨퍼런스의 문을 연 서울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신경환 교수는 “의료기기가 발전하고 임상연구가 이어지며 분할 횟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에서는 방사선치료를 받을 때마다 전신마취가 요구되는만큼 분할 횟수가 더 주요한 문제가 된다.
방사선치료는 수술적 절제, 항암제와 함께 암치료의 주요 무기 중 하나다. 사람에서는 2019년 기준 국내에서 연간 발생한 암환자 25만여명 중 30%가량이 방사선치료를 받았을만큼 보편화되어 있다.
신 교수는 방사선치료가 장기보존적인 암치료라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암 치료 이후의 사회 복귀나 삶의 질 측면에서 낫다는 것이다.
가령 방광이나 직장·항문에 생긴 종양의 경우 암조직과 주변부를 절제하면 배뇨·배변 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남길 위험이 크다. 수술 대신 방사선치료가 더 적합하다. 이는 동물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려동물에서 다발하는 방광종양(TCC)은 방사선치료의 주요 대상 중 하나로 꼽힌다.
방사선치료하는 동물병원 5곳으로..IMRT 활용
근치적 치료 위주지만..완화적 활용도 늘어날 것
국내 수의학에서는 2019년 헬릭스동물메디컬센터가 처음으로 방사선치료기를 도입했다. 이듬해인 2020년에 에스동물암센터가, 2022년에는 서울대 동물병원이 뒤를 이었다.
이후 로얄동물메디컬센터 본원과 VIP반려동물암센터까지 방사선치료를 하는 동물병원은 5개소로 늘어났다.
동물에서의 방사선치료도 세기조절방사선치료(IMRT)를 활용해 부작용을 줄인다. 종양조직과 주변 정상조직의 위치를 고려해 방사선 조사면을 세분화하고, 세분화된 각 영역마다 조사되는 방사선의 세기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목표지점(종양조직)으로는 충분히 방사선을 조사하면서도 주변 조직으로의 조사량은 가능한 낮출 수 있다.
에스동물암센터 허찬 원장은 “국내 동물임상에서 방사선치료의 저변은 지난 5년간 많이 확대됐다”면서 “초기에는 (방사선치료) 설득에 많은 공을 들여야했지만, 이제는 보호자 분들도 방사선치료가 암치료의 옵션 중 하나라는 것을 전제하고 내원하신다”고 말했다.
서울대 동물병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최지혜 교수도 방사선치료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전했다. 방사선치료로 인한 마취건수만 봐도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신경환 교수는 “동물에서 방사선치료는 암조직에 직접 방사선을 조사하는 근치적 치료가 주가 될 것”이라고 봤다. 종양이 국소부위에 제한되어 있고 원격전이가 없는 경우 완치를 목표로 시도하는 형태가 ‘근치적 치료’다.
허찬 원장은 국내 반려동물 암환자의 보호자들이 근치적 치료가 가능할 때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앞으로는 완화적(고식적) 치료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암을 완전히 없애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뼈전이로 인한 통증이나 암으로 인한 염증 등을 방사선치료로 줄여주면 말기 환자의 삶의 질이 크게 개선되고 보호자 만족도도 매우 높다는 것이다.
최지혜 교수도 근치적 치료를 주로 시도하지만, 전이가 있는 경우 등에는 보호자와의 설명·동의를 거쳐 완화적 치료를 실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치료계획 수립에 한 나절, 할 때마다 전신마취..업무 부담 커
주별 신환 추가는 한 손에 꼽는다
정밀의료·인공지능 적용 화두..업무부담 줄이고 수요 교통정리
반려동물 암환자에 방사선치료를 실시하고 있는 두 곳 모두 현재 물리적 한계를 어려움으로 꼽았다. 반려동물 암환자는 많고, 방사선치료기는 몇 없는데다 한번 치료하는데 들어가는 품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영상진단을 기반으로 방사선치료계획을 세부적으로 수립하는데 짧으면 몇 시간, 길면 한나절이 소요된다. 환자에 따라 적용하는 프로토콜이 다르지만, 일단 시작하면 분할치료로 수 회 이상 방사선치료를 반복해야 한다. 할 때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 치료에 들어가는 진료진의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두 곳 모두 방사선치료를 시작할 초진 환자는 매주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환자 대기가 불가피하다.
바꿔 말하면 방사선치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셈인데, 이에 대해 허찬 원장은 “앞으로 국내 동물병원에 방사선치료기 도입이 더 늘 수 있다”면서도 방사선치료 수요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함께 지목했다.
반려동물 암환자들 중에서도 개체별로 방사선치료가 효과를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정밀의료가 화두라는 것이다. 에스동물암센터에서는 유전자검사에 초점을 맞춰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허 원장은 “사람은 암보험도 있고 항암이든 수술이든 방사선치료든 가능한 치료는 모두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동물은 다르다”면서 “동물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효율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암치료에서도 어떤 옵션을 더 우선해야 할지 가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근거기반 예측을 통해 방사선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환자라면 잠재됐던 수요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라면 방사선치료를 우선하려는 보호자도 다른 암치료 옵션으로 유도할 수 있다.
개별 방사선치료에 들어가는 업무량에도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방사선치료계획을 수립할 때는 방사선 조사부위를 명확하게 설정하기 위해 주변 정상장기의 경계부를 구분하는 윤곽화(contouring) 작업이 필수적인데, 몇 시간에 걸쳐 수동으로 해야 하는 윤곽화를 인공지능이 도와주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이 내놓은 윤곽을 진료진이 점검하는 식으로 운용하면 수 시간의 업무량을 10분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서는 이러한 AI기반 자동 윤곽화 프로그램을 방사선치료계획 단계에서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AI의 도움을 받으면 의사 간의 차이를 줄여준다는 다기관 연구가 보고되기도 했다.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온코소프트(Oncosoft) 관계자는 이날 컨퍼런스 현장을 찾아 “AI의 도움을 받아 치료계획 수립에 들어가는 업무 부담을 줄이면 방사선치료에 필요한 다른 부분에 집중할 수 있다”면서 “사람에서는 이미 절반가량의 방사선치료학과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물에서도 서울대 동물병원, 에스동물암센터, 경상국립대 수의대와 협력하고 있다며 “내년이면 보다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품질보증·안전관리..방사선치료 신뢰 저변 다져야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서울대병원 방사선의학물리 최창헌 교수가 방사선치료에서 방사선의학물리의 역할을 조명했다. 방사선 안전관리를 위해 고려해야 할 의학물리학적 지식과 관련 규제를 소개했다.
최지혜 교수는 “반려동물 환자에서 방사선 치료 수요는 매우 크다. 치료를 진행하면 삶의 질도 크게 개선돼 보호자 만족도도 좋다”면서도 “지금은 ‘방사선 치료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사선치료가 목표한대로 실제로 운용되는지, 안전한지 등 종합적인 품질보증(QA)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진료진의 의학물리학적 역량을 다지는 것도 과제로 꼽았다.
선두 그룹이 방사선치료를 보급하고 있는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면서 “그냥 방사선치료를 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신뢰할 수 있는 저변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