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계에는 많은 원로분들이 계십니다.
그 중 농식품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대한수의사회,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를 거쳐 현재 한경대학교 HACCP교육원장 및 CTC바이오 상임감사를 맡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배상호 수의사님이 그 주인공인데요, 배상호 수의사님은 영국래딩대학교 연수시절 ‘수의역학 및 경제학’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생이지만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상호 수의사님을 데일리벳에서 만나 수의사의 전문성, 수의방역조직 확대 문제, HACCP 에서 수의사의 역할, 수의역학 및 경제학의 중요성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Q. 농식품부, 검역원, 대한수의사회, 방역지원본부 등 이력이 대단하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으며,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수의대 4학년 겨울방학에 동물병원 실습을 위해 중구 필동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잠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공직을 택하게 됐다. 첫 직장으로 농식품부 소속 축산물검사원으로 근무를 시작하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농식품부 가축위생과장,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연구부장,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본부장 등을 거쳤다. 지금은 한경대학교 축산위생교육원장(HACCP) 및 CTC바이오 상임감사를 맡고 있다. HACCP 교육원장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필수교육·보수교육을 진행하며, 식품위생학이나 동물질병학 강의도 한다.
Q.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2003년 11월 부터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당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전무이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2003년 12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AI 방역으로 매일 방역대책회의를 하던 중 혈변을 보기도 했다. 결국 2004년 3월 AI종식과 함께 병원을 찾았고, 대장암 2기 진단을 받았다.
결장 34cm, 맹장 그리고 담낭까지 제거하여 쓸개 빠진 사람이 되었지만, 지금은 다 괜찮아졌다.
Q. 수의과대학에서 HACCP에 대한 공부를 하지만, 실제 HACCP 분야에 종사하는 수의사는 적은 것 같다.
이전까지 축산물 위생관리는 제품에 대한 관리였다. 하지만 HACPP 개념이 도입되며 생산부터 소비까지 단계별로 위해요인을 분석하게 됐다. 다들 아는 것처럼 HACCP는 NASA에서 유래됐다.
개인적으로 HACCP는 꼭 수의사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HACCP의 주요위해요인은 결국 전염병 미생물이고, 농장 HACCP의 80%는 방역이다. 따라서 방역과 위생의 전문가인 수의사가 주도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젋은 수의사들 대부분이 소동물 임상에 쏠리는 상황에서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 설립 등 산업동물 분야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진행되고있다. 산업동물 임상과 HACCP는 관련이 많기 때문에, 산업동물 분야 활성화와 함께 HACCP에 대한 교육도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HACCP 분야에서 수의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번에 HACCP와 관련된 책을 썼는데, 이것도 HACCP 분야에서 수의사의 역할이 커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Q.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 집필한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전략 및 축산물의 안전관리인증제도(HACCP) 운영 매뉴얼’에 대해 설명해달라.
FTA 등 세계무역자유화의 대응전략은 구제역 등 악성가축전염병이 발생되지 않는 ‘질병청정화’와 ‘안전축산물생산’으로 소비자 및 생산자를 보호하는 길이다.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무역자유화 추세에서 현행 FTA의 실체를 분석하여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농축산업의 생존권 확립을 위한 효율적인 HACCP 운영방안을 제시하여 수의 관련 분야 종사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집필했다.
지난해 2월 발간한 ‘FTA 대응전략 1, 가축질병 위생관리 매뉴얼’이은 2편이다.
Q. 약력을 보니 영국래딩대학교에서 수의역학 및 경제학을 공부했다. 최근 AI 사태를 보더라도 방역에 있어 ‘역학’이 정말 중요한 것 같은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자 박사학위까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의과대학과 연계가 되지 않아 박사과정 진학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안타까워하며 외국유학의 길을 모색하던 중 박용호 교수(현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의 추천으로 영국래딩대학교의 ‘수의역학 및 경제학(VEERU, Veterinary Epidemiology & Economics Research Unit)과정에 입학하게됐다.
이 분야는 가축전염병 발생시 살처분 할 것이냐, 백신접종을 할 것이냐 등 질병에 대한 경제적 손실에 대해 비용편익비(B/C ratio)분석을 시행한 뒤 방역 정책을 결정하는 분야다.
수의역학 및 경제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2010~2011년 구제역 사태를 돌아보면, 너무 많은 가축이 살처분됐다. 일부 지역은 젖소와 돼지가 90% 이상 살처분 됐다. 당시 방역관리를 잘 하던 곳도 500m 안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전부 살처분 당했다. 당시 우리의 FMD 백신 접종은 이미 손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 늦게 내린 결정이었다. 이번 AI도 역학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축전염병 방역에 있어 ‘수의역학( 및 경제학)’은 정말 중요하다. 지난해 검역본부와 강원대 박선일 교수를 중심으로 국제 수의역학 워크숍을 개최하고 ‘수의역학경제학연구회(가칭)’ 설립을 준비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바람직한 모습니다(관련기사 -국제 수의역학 워크숍 개최 `수의과대학에 수의역학 과목 생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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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면서 역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직 국내에 몇 명 없다. 젊은 수의사들도 ‘수의역학/경제학’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고, 수의과대학에도 수의역학 과목이 강화되어야 한다.
Q. 최근 수의방역조직 확대에 대한 필요성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의관련 공직에 오래 근무한 사람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하다.
한 마디로 농식품부내에 수의국이 필요하다. 축산국은 없지만 수의국은 있는 나라가 많다.
‘위생’과 ‘방역’ 이라는 중요한 업무가 있다. 이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조직체계를 키우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수의과대학의 수준이 높아지고 수의학교육이 발달하면서 수의계 인재 양성은 됐는데 조직체계가 못 따라오고 있다. 큰 문제다.
이번에 AI 사태가 수의방역업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계기라고 생각한다. 위생과 방역이 안되면 사실상 축산도 올스톱이다.
‘국’이 되어야 정책결정을 할 수 있다. 최소한의 정책 결정단인 수의국(방역정책국)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농식품부의 수의업무는 축산정책국 내 방역총괄과·방역관리과와 국제협력국에 검역정책과 등에서 담당하고 있다. 방역업무와 검역업무가 다른 ‘국’에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검역은 방역의 일부 아닌가? 이것을 분리시켜 놓은 꼴이다.
방역과 위생이 같이 일관성 있게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질병이 없어야 위생도 컨트롤 될 수 있는 것이다.
Q. 수의계원로로서 젊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수의전문성에 대한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수의사는 전문가다. 선진국이 될수록 전문가를 우대하고, 전문가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진다.
다만, 소동물 임상으로 진로가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전문가는 못할 것이 없다. 수의학이라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회의원도 나와야 한다.
수의사의 영역은 굉장히 넓다. 시야를 넓혔으면 좋겠다.
수의과대학도 6년제가 됐지 않나. 후배 수의사들은 충분히 똑똑하고 능력이 있다.
국제화 사회가 되고, FTA 체결국가가 늘어나면서 국제 교류가 증가해도 수의사의 영역은 각 국가가 서로 인정한다. 국가를 떠나 DVM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서로 공감하고 이해한다. 따라서 국제기구로 시야를 넓혀 OIE, WHO, FAO 등에 진출하는 수의사도 많아지면 좋겠다.
물론 후배 수의사들에게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라. 시야를 넓혀라” 라고 말하기만 하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확충 등 후배들의 앞길을 넓혀주는 선배 수의사들의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 노력한 후배들이 대접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선배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