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수의사처방제1년①] 신종직업 ´처방전 전문 수의사´

판매업소와 결탁, 직접 진료 없이 처방전 발급 '처방제 실효성 저해 주범' 단속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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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처방제 도입 후 1년이 지났지만, 산업동물 임상 현장의 수의사들은 ‘별 다른 변화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농가가 여전히 처방대상 약품을 자유롭게 구입해 자가진료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

처방제의 실효성을 저해하는 최대 요인은 무엇일까. 현장에서는 그 요인이 ‘수의사’라고 입을 모은다. 적은 내부에 있다.

약품유통 행태 여전..농가는 주문만, 도매상이 처방전 알아서 처리

처방전 전문 수의사들이 처방전만 첨부할 뿐, 처방대상 약품 자가진료 여전

수의사처방제는 축산물 안전과 국민 공중보건 향상을 위해 주요 동물용 의약품 오∙남용을 막고자 지난해 8월 도입됐다. 처방제의 핵심은 ‘직접 진료 후 처방’. 수의사가 의약품이 필요한 상황인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처방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약품 유통 행태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충남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양돈수의사 A씨는 “처방제를 통해 동물용의약품의 오∙남용 관리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약품판매업소가 ‘처방전 전문 수의사’를 이용하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방전 전문 수의사’는 동물병원을 개설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약품판매업소에 고용되어, 업소에서 판매되는 처방대상 약품에 처방전을 발급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직접 진료 없이 처방전만 내어주는, 이른바 ‘테이블 수의사’라는 점이다. 심지어는 소 임상수의사를 섭외해 양돈농가용 처방전을 발급하는 등의 웃지 못할 고용형태까지 나타났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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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양돈수의사 B씨는 “지금도 농가는 처방대상 여부와 관계없이 약을 주문해 구입할 수 있다”면서 “도매상이 처방대상 약품은 알아서 처방전을 끊고 배달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종봉 소임상수의사회장도 “여전히 농가가 알아서 의약품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면서 “지난 1년간 처방전 발급을 위한 직접 진료 왕진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수의사 처방을 의무화한 처방대상 약품이 여전히 자가진료에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직접 진료를 하지 않는 ‘처방전 전문 수의사’들이 처방전만 첨부했을 뿐, 처방제 본연의 취지는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

양돈수의사 B씨는 “처방제는 현재까지 실패이며, 실패의 많은 책임은 결국 수의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테이블 수의사 일벌백계해야..대수, 하반기 정부와 점검 추진 계획

이와 관련해 ‘처방전 전문 수의사’를 단속∙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이 직접 진료 없이 처방전을 내어주다 보니, 처방제를 지키려는 동료수의사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황윤재 양돈수의사회장은 “처방전 전문 수의사가 수의사의 격을 떨어뜨리고 처방제 본래 취지를 해치고 있다”면서 “경제적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수의사회원을 처벌하고 수의사회 차원의 자정작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지난 1년 간은 제도 도입 초기인 만큼 적극적인 사법처리를 시도하지 않고 일단 두고 보고 있었던 측면이 있다”며 “올해 초 계획했던 실태파악이 AI사태로 미뤄졌지만, 전염병 발생상황이 안정화되면 농식품부와 함께 점검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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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진료 여부 단속 어려워..하루 처방전 발급 개수 보고 1차 판단해야

‘축산차량등록제 GPS 정보 활용해서 단속해야’ 의견도

점검의 핵심은 처방대상 약품을 처방전에 의해 판매하는 지 여부와, 직접 진료를 통해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지 여부에 있다. ‘처방전 발급 수의사’ 단속은 후자에 속하지만, 현행 수의사처방제로는 단속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이 발행한 처방전을 일일이 살펴보며 직접 진료를 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은 ‘하루에 발급한 처방전의 개수’다. 소 임상수의사인 이한경 행복을찾는동물병원장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진료해도 하루 15 케이스를 넘기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대한수의사회 측도 하루에 발급하는 처방전 개수의 현실적인 모니터링 기준을 10개로 보고 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개수의 처방전을 발행했다면, 결국 직접 진료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전자처방전이 아닌 수기(手記)처방전의 경우 중앙에서 개수를 모니터링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전자처방전은 시스템에서 일별 발급 건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수기처방전은 결국 일일이 세어보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자체 단속반이 수기처방전 일별 개수까지 파악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고, 설사 개수가 파악되더라도 기준에 미달하면 추궁하기가 힘들다는 한계점이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축산차량등록제를 수의사처방제 단속에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 제기됐다. 산업동물 임상수의사의 진료차량에 이미 GPS 장치가 달려 있으니, 정말 농장에 가서 진료했는지 여부는 GPS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처방제 도입 1년을 맞아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실효성 제고를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수의사 내부의 자정작용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양돈수의사 B씨는 “처방제가 그들(처방전 전문 수의사)을 위한 제도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종봉 소임상수의사회장은 “직접 진료 없이 처방전을 발급하는 수의사를 단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가부터 진료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진료비 보조사업’이나 ‘가축질병 공제제도’ 등을 확대한다면 처방제 도입취지도 자연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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