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수의사처방제1년④] 늘어난 동물약국,많아진 자가진료

처방제 계기로 동물약국 급증, 동물약국 중심 자가진료 확대..반려동물병원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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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가 방문했던 서울시내 한 동물병원. 원장 수의사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보호자가 병원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보호자는 “1차 백신접종은 원장님께 맞고 그 뒤로는 계속 동물약국에서 맞췄는데요, 동물약국에서 ‘동물병원에서 맞아야 하는 백신이 있다’고 해서 다시 왔어요”라고 말했다. 수의사처방제 처방대상 약품으로 지정된 광견병 백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종합백신은 약국에서 사다 맞히고, ‘수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광견병 백신은 동물병원에서 맞히는 것이다.

동물약국 증가로 일선 동물병원이 겪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눈 앞에서 ‘동물약국에서 (백신을) 맞췄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보호자를 보니, 동물약국으로 인한 자가진료 증가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반려동물 백신 중 처방대상 약품으로 포함된 백신은 광견병 백신과 렙토스피라가 포함된 DHPPL 등 인수공통전염병과 관련된 백신 뿐이다. DHPPi 등 나머지 백신은 처방대상 약품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처방대상 약품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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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본지가 동물약국에서 구입한 반려동물 피부치료제

수의사 처방에 따라 안전하게 약품을 사용하자는 목적으로 도입된 수의사처방제. 반려동물 임상에서는 거꾸로 가고 있다.

처방제 도입을 계기로 동물약국이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됐다. 동물약국을 중심으로 자가진료가 늘어나며 반려동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전국 동물약국 3천개, 동물약국협회 창립..대한약사회 공정위 고발 등 적극 지원

수의사처방제가 도입된 지난해 8월을 전후로 전국 동물약국 숫자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11월에는 동물약국들의 단체인 ‘대한동물약국협회’가 창립되기도 했다.

동물약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929개였던 전국 동물약국은 올해 4월 기준으로 2,917개로 증가했다. 산업동물병원을 제외한 반려∙혼합동물병원이 전국 3,157개(대한수의사회 자료)임을 감안하면 거의 비슷한 숫자로까지 늘어난 것이다.

반려동물 대상 약품판매에 주력하는 대부분의 동물약국들은 심장사상충예방약과 백신을 중심으로 구충, 피부 등으로 취급 범위를 늘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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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대한수의사회를 방문한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왼쪽)

대한약사회도 이 같은 움직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은 메이저 심장사상충예방약(레볼루션∙애드보킷∙하트가드)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대한수의사회와 한국동물약품협회, 3개 제약사를 방문했다. 제약사들이 ‘심장사상충예방약은 수의사 검진을 통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지난해 10월 한국조에티스와 바이엘코리아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동물용의약품 강의를 수강한 약사들에게 약사회장 명의의 인증서를 발급하고, 조찬휘 회장이 ‘약학대학에서 동물용의약품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처방제 도입으로 반려동물 자가진료는 오히려 늘어..피해는 고스란히 보호자와 동물에

수의사처방제가 막고자 했던 것은 결국 자가진료다. 수의사가 아닌 비전문가가 직접 약품을 사용하다 보니 오∙남용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방제 도입 이후 동물약국이 보호자를 대상으로 백신 자가접종을 유도하는 등 반려동물 자가진료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처방제가 오히려 자가진료를 늘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의 문제는 보호자가 약사에 대한 일반적인 신뢰도를 바탕으로 보다 쉽게 자가진료를 시도하게 되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는 여전히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몫이라는 점에 있다.

동물병원 수의사는 진료와 처방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지만, 약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초 본지가 보도한 [약국에서 구입한 백신 접종 후 쇼크…약사는 `보호자 책임이다`(2014년1월14일자∙보러가기]에서 백신 접종 쇼크에 대해 보호자가 따지자 해당 동물약국 약사는 “백신에 대한 위험부담은 보호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자가 백신접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몰랐어도 문제고, 알면서도 ‘책임이 없다’며 팔았어도 문제지만, 책임소재를 떠나 피해는 결국 그 동물과 보호자에게로 돌아간다.

동물약국백신_아나필락식스
당시 동물약국에서 구입 후 자가접종한 백신으로 아나필락시스 증세를 보였던 8년령 말티즈. 사진은 응급처치로 어느 정도 회복된 이후에 촬영한 것.

동물약국 주사용 제제 아니면 처방대상이라도 자유 판매..약품 안전 사용 구멍

동물약국 예외조항도 문제다. 동물약국은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와 주사용 항생제를 제외하면 처방대상 성분이라 하더라도 수의사 처방 없이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다. 마취제든 호르몬제든 마음대로 팔아도 된다는 것이다.

최근 동물용 마취제를 악용한 납치미수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메이저 언론에서도 동물용 마취제가 수의사 처방 없이 판매될 수 있는 현행 제도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등 약국 예외조항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더구나 지방 동물약국에서 산업동물용 의약품 판매에 적극 나설 경우, 농가가 처방제 도입 이전과 같이 처방대상 의약품을 자유롭게 구입해 자가진료에 활용할 위험성도 있다.

지난 기획기사에서도 다뤘듯 처방대상 성분의 범위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도 약사 예외조항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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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본지가 동물약국에서 구입한 아세프로마진 성분 마취제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처방제를 바라보는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분명 처방제 도입 이전부터 동물약국은 지금처럼 동물용의약품을 모두 판매할 수 있었고, 처방제 도입을 통해 주사용 항생제∙주사용 생물학적 제제는 수의사 처방이 필요하도록 변경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처방제 도입이 동물약국을 통한 자가진료 증대의 계기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선 1차 동물병원 운영의 근간이 되는 예방의학 진료가 위협받고 있다.

반려동물 백신 전 성분 처방대상으로 지정해야..심장사상충예방약도 포함될 것

동물병원 자체적인 차별화 노력도 필요해

이를 막기 위한 1차적인 목표로 반려동물용 백신의 처방대상 지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반려견용 5종종합백신∙광견병∙렙토스피라 백신 뿐만 아니라 4종 종합백신과 고양이용 백신 등이 전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올해부터 협의를 시작할 2단계 처방대상 성분 확대에 반려견 4종 백신을 포함시킬 것”이라면서 “셀라멕틴(selamectin)과 목시덱틴(moxidectin) 등 반려동물에게만 사용하는 심장사상충예방약 성분도 포함시키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장사상충예방약의 경우 약사예외조항으로 인해 처방대상에 포함되더라도 동물약국은 영향을 받지 않지만, 보호자들 사이에서 똑같이 ‘동물약국’으로 인식되고 있는 대도시 동물용의약품도매상들은 적용 받는다.

메이저 심장사상충예방약 일부가 이미 동물약국에 음성적으로 유통되고 있고, 보호자 커뮤니티 사이에서 동물약국 활용이 많아지는 가운데 일선 동물병원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에 심장사상충예방약을 처음 도입했을 때와 같이 심장사상충 검진과 백신 항체가 검사의 필요성 등을 지속적으로 설득해나가야 동물약국과 차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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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방한한 스티븐 에팅거 UC Davies 석좌교수는 데일리벳과의 인터뷰에서 “약만 살 것이라면 저렴한 약국에 가지 동물병원에 올 이유가 있겠느냐”면서 “수의사로서 전문적인 지식을 판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동물병원협회, 약국 예외조항 문제 지적..산업동물로 자가진료 범위 한정해야

한국동물병원협회 허주형 회장은 “자가진료와 약품 오남용을 조장하는 수의사처방제 약사 예외조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현재 ‘자기가 사육하는 동물에 대한 진료’를 허용한 수의사법 시행령을, 축산법 상 축산업으로 등록한 양축농가에 한해서 자가진료를 허용하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가진료 철폐가 축산농가의 반대로 어려운 만큼, 양축농가에게 자가진료를 허용하되 축산업 등록범위를 확대하려는 정부 기조에 부합하도록 하고, 높아진 반려동물 보호의식과 복지수준에 부합하도록 반려동물 자가진료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허주형 회장은 “이 같은 제도적 보완을 통해 약사 예외조항이 만드는 부작용을 해결하고 수의사처방제가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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