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없이 전쟁 이길 수 있나..수의역학 기반 확충 필요성 절실

가축전염병 방역의 근간 중 하나는 수의역학이다. 전염병의 발생원인과 확산경로를 찾아내는 역학조사는 전염병 피해 최소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내 수의축산업계는 몇 년 마다 한 번씩 고병원성 AI나 구제역 등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구제역 백신공급이나 소독시설 지원 등 눈에 보이는 대책은 많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수의역학의 기반 마련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러다 보니 악성 가축전염병의 발생규모에 비해 국내 수의역학 역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수의역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역학조사를 벌이거나 역학 관련 정책을 펼칠 전문가도 부족하다.

가축전염병에 대한 역학조사는 결국 농림축산검역본부 역학조사과가 도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고병원성 AI 등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기라도 하면 인력과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진행하기 힘들다.

H5N8형 AI가 한창 확산되던 지난 봄, 한 역학조사 관계자는 “휴일은 고사하고 매일 밤늦게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라며 “제대로 된 역학조사에는 시간과 분석이 필요한데, 현장에 막 도착한 역학조사관에게 ‘왜 발생했는지’ 다짜고짜 묻는 일이 많아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역학전문가를 양성하지 못하는 국내 수의학 교육에 대한 지적도 있다.

수의역학 과목이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분류되어있거나, 아예 수의공중보건학에 포함되어 있는 학교가 많다. 수의역학을 가르칠 인력도 부족하다. 수의역학을 전공한 교수는 강원대 수의대의 박선일 교수가 유일할 정도다.

지난해 봄, 가을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개최된 국제수의역학워크숍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학 연구인력 양성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전문가 인력을 모아 학회를 조직해 이를 바탕으로 교육과정 개편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안성 레이크힐스 리조트에서 ‘2014년 국제 수의역학 워크숍’이 개최되고, 이 자리에서 ‘대한 수의역학 경제학 연구회’ 창립총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연구회는 국내 역학연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회 창립과 함께 역학전문가 양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수의대 교육과정에서는 역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고, 역학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예비수의사들의 동기를 유발하기 힘든 상황.

검역본부나 지자체 방역기관을 통해 교육여건 개선을 지원하고, 정부 내에도 역학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전문조직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는 슬로건을 바라볼 때, 역학은 국방의 전략과 전술이다. 이제껏 고병원성 AI와 구제역 등으로 입은 천문학적 피해를 고려한다면 결코 성공적인 국방이었다고 평하기 어렵다.

앞으로라도 가축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의역학이라는 전략∙전술을 연구해야만 한다. 수의역학에 대한 정부와 수의계의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