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성철 코미팜 대표 `올바른 진로 결정으로 행복한 수의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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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기준으로 동물약품업계에 종사하는 수의사는 약 480여명으로 추정됩니다(대한수의사회). 전체 수의사의 3%가 안되는 작은 숫자지만 동물약품분야 역시 반드시 수의사에 의해 관리·취급되어야 하는 중요한 분야입니다.

현재 국내 동물용의약품 제조기업(완제품)은 약 70곳입니다. 그 중 가금티푸스 생균건조백신 등 5개 자체개발 주요제품의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해외시장으로 빠르게 진출하고 있는 회사가 있습니다.

(주)코미팜이 그 주인공인데요, 코미팜에도 10여명의 수의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데일리벳에서 코미팜의 대표이사면서 경상대 수의대 총 동창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문성철 수의사님을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어떻게 수의대에 진학하게 됐나?

어린 시절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땅 한 평도 없는 곳에서 배고프게 살면서 자연스레 ‘땅 있는 농장을 하자’는 것이 막연한 꿈이었다. 그래서 고3 때도, 부모님이 착유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를 따라 주말마다 친구 집에 가서 일했다. 젖도 짜보고 똥도 치우고 사료로 주면서 일했는데, 당시에는 그게 너무 행복하고 최고로 재밌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수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본고사를 보던 시절이었는데 응시료 3천원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빌렸고, 교통비 1천원도 없어서 빌려서 시험을 쳤다. 이때 까지도 수의과대학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집에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집에 가서 수의대 시험을 봤다고 얘기했더니 ‘천한 직업을 택했다’고 난리가 났었다. 그런 반대 속에 겨우겨우 등록 마감 30분 전에 대학교에 등록할 수 있었다.

 

Q. 수의대 시절은 어땠나. 또 언제부터 동물약품업계에 종사했는지 궁금하다.

원래는 병원 개업이 꿈이었다. 당시에는 대동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개업을 꿈꾸면서 말, 소, 돼지, 사슴 등 다양한 동물들에 대해 공부했다. 현재 경상대 수의대에 있는 다양한 동물 골격들 중에 내가 만든 것도 많다. 그렇게 학교 병원에서 쭉 생활을 하면서 공부했다.

대학시절에 ROTC(21기)를 하게 됐는데, 주변에서 ‘군대 체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되면서 수의대 졸업과 동시에 군인으로 진로를 결정할지 말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다. 그 때가 26살이었을 때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군인으로 진로를 결정했을 때는 장군이 되지 못할 경우에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사회로 나와 직장 취직을 결정했다.

ROTC 출신이라 인의 제약사 등에서 취직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선택하지 않고, ‘국립종축원’에 수의사 TO(전체 TO 9명)가 한 자리가 비어있다는 말을 듣고 지원하게 됐다. 그런데 선배 수의사가 “각 지역에 수의과대학이 있는데, 이미 경상대 출신의 수의사들이 4명이나 있다. 국가기관에서 한 학교 출신이 절반 이상인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선배님 말씀이 백 번 옳다”고 말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나왔다. 육군중위 계급장을 달았을 때라 그랬던 것 같다.

그 뒤 취직한 회사가 코미팜이다.

 

Q. 회사 생활을 어떠했나. 입사 당시에는 코미팜이 지금처럼 큰 회사가 아니었을텐데.

내가 코미팜에 들어왔을 때가 1985년이었는데, 당시 코미팜은 봉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작은 회사였다. 육군중위로 있다가 나와서 취직한 회사인데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니 참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하더라. 취직 3개월 만에 IBR 백신 관납을 한 뒤 처음으로 급여를 줄 정도였다. 그렇게 회사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은 남의 도움없이 꼭 내손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한 마디로 ‘올인’했던 것 같다.

 

Q. 회사 생활 중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다. 대표이사가 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나.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는데 40대 중후반의 선배님들이 회사를 관두게 되는 걸 보고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결혼해서 둘째까지 낳았을 때였는데 ‘지금 이 상태로 회사생활을 하면 미래가 비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1살이라도 어릴 때 내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6개월간 새벽에 임상 일을 배우면서 회사생활을 병행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 꿈’이었던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봉담에 한 농장으로 이사를 해서 오리, 돼지, 개 등을 키우면서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쉽지 않더라.

그 때 “꿈만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열정과 희망이면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었는데, 현실을 직면하니 내가 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내 인생의 운명적인 ‘이정표’ 같은 일이 일어났다.

키우던 개들이 파보바이러스에 감염됐는데 ‘수액을 주면서 따뜻하게 해주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만 가졌지 회사생활과 농장일을 같이 하다보니 실제로 그렇게 해주지 못했고, 개들이 파보장염으로 많이 죽게됐다. 그걸 보고 아내가 “당신이 무슨 수의사냐, 생명들이 눈앞에서 이렇게 죽어가는데”라고 말하더라. 당시 내가 33살이었는데 누가 망치로 친 것처럼 머리가 띵 하더라. 그래서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1992년에 1년간 동물병원(산업동물)을 개업해서 운영해봤다.

그런데, 사실 이 때도 내가 세상을 잘 몰랐었던 것 같다. 수의대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제대한 자존심만 있었지, 실제 산업동물 시장과 경영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그래서 1년간의 방황 끝에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이 1년간의 시간이 나에게 큰 변화를 주고 깨달음을 줬다. 그 깨달음은 ▲수의사였지만 산업동물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 ▲어릴 때부터 꿈이 농장을 운영하는 거였지만 실제 내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잘 모르면서 열정만 가지고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금까지의 내 삶은 허울이었고,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구나’라고 느끼며 ‘세상이 나에게 바라는 일,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겠다’고 생각하고 ‘사회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매주 주말마다 양돈, 낙농, 육계 등 산업동물 각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배우고 여러 가지 노하우도 배웠다. 2002년까지 매주 주말 전국을 누비며 성공한 각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당시 차량의 한 달 주행거리가 1만~1.2만km에 이를 정도였고, 멀리까지 다녀올 때는 새벽 3~4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 2시에 돌아오고는 했다. 그렇게 죽기살기로 현장을 경험하다보니 수의사라는 ‘전문성’과 현장의 ‘경험’이 자연스레 합쳐지면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죽기살기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지금도 회사에 6시40분에서 7시면 출근을 한다.

 

Q. 경상대 동창회장으로 활약중이다. 동창회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재학생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다. 각 분야의 얘기를 들려주고 자기 스스로 여러 가지 분야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번에 학생회에서 다양한 수의사들을 초청해 진행한 세미나day 행사도 좋았다.

일이 바쁘긴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미팜

 

Q. 코미팜의 해외시장 진출이 놀랍다. 이에 대해 좀 더 알려달라.

현재 국내 동물약품시장은 한계에 봉착했다. 하지만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동물약품시장은 크게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 ‘해외시장 진출’의 가장 중요한 때다.

코미팜의 경우 1994년 베트남 수출을 시작으로 현재 22개국에 동물약품을 수출하고 있다. 재작년 수출 100만불 탑을 받았고, 작년에 수출 300만불 탑을 받았으며, 올해 500만불, 내년에 700만물 탑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전체 매출은 약 340억원이다.

 

Q. 수의사 선배로서 마지막으로 후배 수의사/수의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최근 후배 수의사들이 막연히 소동물 임상수의사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수의사의 꽃은 물론 임상이다. 하지만 모든 수의사가 임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나도 어릴 때 꿈이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내가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항로를 수정했다.

요즘 수의대 후배들은 입학점수부터 높다. 수재들이 수의대에 입학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그 능력들을 펼칠 수 있다. 절대 맹목적으로 진로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따라서, 꼭 재학생 시절에 각 분야 선배들을 다양하게 만나보고 경험해본 뒤 어떤 길이 내 적성에 맞는지 꼭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자신의 적성과 다른 길을 선택하면 결코 ‘행복한 수의사’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적성을 잘 파악하여 적성에 맞는 길을 택한 뒤 열심히 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 잘 준비하면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그럼 행복한 수의사가 될 수 있다.

모두 ‘행복한 수의사’가 되길 바란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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