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4] 행동의학 전문 `비아동물행동클리닉`

최근 우리나라 반려동물병원은 무한 경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수의사·동물병원의 폭발적 증가, 신규 개원입지 포화, 보호자 기대수준 향상, 경기불황 등이 동물병원 경영을 점차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병원 경영 여건 악화는 비단 수의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료계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비슷한 문제를 겪으며 병원 경영의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진료과목의 전문화’가 급속도로 이뤄졌습니다.

이미 내과,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신경과 등 전문의 제도가 도입되어있는 인의 쪽에서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점차 더 전문화하고 있습니다. 성형외과의 경우 지방흡입전문, 모발이식전문, 얼굴뼈 전문에 이어 다크서클 전문 성형외과까지 등장 할 정도입니다.

특정 전문 진료 과목에 초점을 맞춘 전문병원이 모든 진료과목을 다루는 종합병원보다 경영 효율성 개선에 훨씬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임상 수의계를 돌아보면, 아직 전문의 제도는 없지만 임상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수의사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사실상 특정 진료 분야 전문 수의사(전공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의계도 이제 모든 진료과목을 다루는 동물병원보다,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자신있는 분야에 집중하여 그 진료 과목을 특화시킨 ‘전문진료 동물병원’ 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에 따라 데일리벳에서 특정 진료과목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전문진료 동물병원’을 탐방하고, 원장님의 생각을 들어보는 ‘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를 시리즈로 준비했습니다.

   

그 네 번째는 동물행동의학 전문 ‘비아동물행동클리닉’입니다.

클리닉 인 클리닉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비아동물행동클리닉은 행동학 진료만을 100%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데일리벳에서 김선아 원장을 만나 행동학의 특징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행동의학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수의대생 시절 처음 관심이 있었던 것은 행동학이 아닌 피부 쪽이었다. 당시 키우던 화이트테리어가 아토피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를 낫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피부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

피부 쪽에 관심이 있으면서 자연스레 일반 로컬병원이 아닌 전문화된 병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본과 4학년에 UC데이비스 수의과대학 피부과에 인턴을 가게됐다. 하루는 너무 심하게 긁어 몇 년 동안 엘리자베스 칼라를 쓰고 살았던 고양이가 피부과에 내원했다. 여러 동물병원을 전전하다가 대학병원으로 왔는데, 지도교수님이 행동학 문제라며 행동의학실로 보내더라. 행동의학실은 피부과 바로 옆방이었다.

보호자가 병변 부위에 와사비를 바른 경험이 있을 정도로 핥는 문제가 심각했던 도베르만도 환자로 피부과에서 행동의학실로 보내졌다.

그렇게 처음 행동의학이라는 것을 접하게됐다.

그 뒤 ‘내가 내과, 외과, 피부과를 하는 것보다는 행동의학을 열심히 하는 것이 더 많은 동물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행동의학이 동물복지에도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행동학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Q. 행동학 전문이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나. 국내에는 저변이 없어 힘들었을 것 같다.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사실 나도 한국에서 행동학 공부를 하는 것이 막막했다.

HAB에 관심을 갖고 계셨던 서울대 신남식 교수님 연구실에 2008년 대학원생으로 들어갔다. 교수님은 내가 행동학 관련해서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어하면, 그 중요성을 잘 이해해주셨다.

또 비슷한 시기에 서울대로 부임하신 기무라 준페이 교수님(해부학)을 통해 일본에서 행동의학 연구를 하고 있던 마미 교수의 초청강연을 들었던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시드니의 유명 동물행동학 클리닉에서 인턴쉽을 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의 행동학 스페셜리스트 자격이 있는 수의사가 운영하는 클리닉이었는데 그 분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상담하는 방법이나 여러 실질적인 케이스를 배웠다. 그 외에도 미국 코넬대학 등 여러 행동학 연수 코스에 참가했다.

행동의학 뿐만 아니라 훈련도 배웠다. 나는 ‘훈련’ 이라는 표현 대신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행동학적인 치료는 약물과 행동관리, 환경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치료에는 훈련도 필요하다. 내가 훈련을 직접 시킨다기 보다는 훈련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정확한 행동학적 치료가 가능하겠다 생각해서 배웠다.

한국에서는 예전에는 초크체인 등 강압적인 훈련이 대세였는데,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미국으로 훈련법을 배우러 가서 과정을 이수했다.

또한, 행동학 학회라면 무조건 가려고 노력했다. 외국 학회도 자비를 들여서 갔다. 외국 학회에 가고 외국의 어떤 과정에 참가하는 것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정말 일해서 번 만큼 배우는 것에 다 쏟아 부었던 것 같다.

물론 관련 교과서를 열심히 보는 것은 기본이었다.

Q. 현재 비아동물행동클리닉은 다른 병원에 속해있는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현재 비아동물행동클리닉은 ‘클리닉 인 클리닉’ 형태다. 나중에 외곽지역에서 행동학 전문 병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행동학 전문병원만으로 독립해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지금은 행동학 자체를 알리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대부분의 임상학술대회에 참여해서 강의도 열심히 하며, 행동학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수의사가 있다는 걸 알리는 중이다.

 

Q. 행동학 케이스는 어느 정도 있나.

진료 외적인 업무가 많아 일주일에 하루 이틀 밖에 진료를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케이스 숫자도 유동적인 편이다.

1 케이스마다 1~2시간의 상담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에 최대로 예약 받는 진료수는 3건이다.

모든 진료는 예약으로만 진행된다.

Q. 상담 위주로 진행되는 진료과목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 진료비용을 책정하기도 까다로울 것 같은데.

1회 상담비만 해도 상당한 편이다. 여기에 검사비용이나 약값 등은 별도다.

인의 쪽 상담비에 비해서도 꽤 비싼 편이다. 동물 행동학은 인의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상담비를 낮추면 케이스는 꽤 늘어날 것 같다. 하지만 내 뒤로도 행동학 분야에 뛰어들 수의사들을 위해서 내가 처음부터 진료비에 대한 인식을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우리나라 진료비, 그 중 상담에 대한 부분은 특히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많은 보호자들이 수의사가 상담을 통해 제공하는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주사 한 번을 맞고 돈을 내는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1시간 상담해준 것에 대해서는 비용을 지불하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의료상담이 무형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행동학 분야가 앞서서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Q. 행동학 외에 타 과목 진료는 안 하는가

그렇다.

사실 행동학 이외에 다른 진료를 보고 싶기도 하다. 예방 접종하면서 정상적인 강아지도 좀 보고 싶다(웃음).

하지만, 행동학에 특화한 클리닉을 개설한 만큼 다른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다른 진료를 하지 않는 것은 보호자들에게 보다 높은 전문성을 가졌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보호자들은 동물병원을 볼 때도 인의 병원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Q. 인상 깊었던 케이스를 소개해준다면

인지장애 문제로 내원한 12년령 슈나우져가 있었다. 활력이 떨어지고 이상증상을 보이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호자까지 물게된 케이스였다. 인지장애 중에 가장 안 좋은 형태인 ‘공격성’이 드러나는 경우였다.

사실 인지장애 증후군은 슬픈 질병이다. 지금까지 형성된 보호자와의 유대관계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키우던 반려견이 이제 내가 집에 돌아와도 날 반기지 않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나.

하지만 인지장애증상도 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호전될 수 있다. 안전문제에 대해 보호자를 교육하고, 중단됐던 인사나 마킹이 다시 시작되면 보호자분들도 상당히 만족한다.

행동학은 죽고 사는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질 문제다. 동물의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의 질도 관련이 된다. 행동 문제를 겪는 동물을 치료함으로써 동물의 삶의 질과 주인의 삶의 질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치료하는 보람이 있다.

Q. 행동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높아진 관심이 느껴지나.

느껴진다. 이메일, 문자, 전화가 예전보다 많이 온다. 특히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최대한 열심히 도와주려고 한다. 나도 학생 때 선배님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올 여름 제주도에 휴가를 가서도 제주대 수의대 학생들을 위해 재능 기부 특강을 진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Q. 미국에는 전문의 과정이 있고, 일본에서는 최근 행동학이 모든 수의과대학에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고 들었다.

그렇다. 행동학은 가장 기본이 되는 학문 중 하나다. 의학을 공부하기 전에 어떤 동물들인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나. 치료나 처치를 하려고 할 때도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치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행동학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안전이다. 동물의 안전, 그리고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서도 행동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진료를 하면서 한 두 번 물리고 할퀴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지만 미국 같은 곳은 그렇지 않다. 안전사고는 병원경영에 직접적인 손실을 끼친다.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이 한국에서도 점차 커질 것이다.

행동학은 점점 발전할 것이다. 무엇보다 보호자들의 관심과 니즈가 커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얘가 왜 이렇게 행동하나요?’라는 보호자의 질문에 충분히 답변하기 위해서는 수의사들도 노력해야 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우선 박사 논문도 마무리 할 계획이고, 추후 미국 스페셜리스트 자격을 획득하고 싶다.

단,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나라에도 행동의학에 관심 있는 수의사들이 많아져서 행동의학의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서서 행동의학 분야에 노력해왔지만 “내가 꼭 큰 동물병원을 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가장 큰 만족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해보는 것’이다.

이후에 행동학에 관심이 생긴 수의사들도 나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우선 먹고 사는 문제가 담보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진료시장이 자리 잡혀야 한다. 그러한 저변이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