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기구에 관심이 많은 젊은 수의사,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인천 송도에서 ‘제3차 세계동물보건기구(OIE) 표준실험실 및 협력연구센터 회의’가 개최된 이후로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에 한국인 최초 OIE 과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검역본부 김용주 박사님께서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후배 수의사들에게 국제기구의 현황과 수의사들이 하는 일, 그리고 국제기구 진출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은지에 대해 글을 작성해주셨습니다.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젊은 수의사들에게
– 김용주 OIE 동물질병과학위원회 부위원장(농림축산검역본부 해외전염병과 수의연구관)
언제 찌는 여름이었나 싶게 서늘한 기운을 느끼는 요즈음,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아름다운 빛깔의 향연이 산과 거리에 펼쳐지고 있어 눈이 즐겁다. 우리 산의 고운 단풍은 여러 가지 색깔로 하루가 다르게 곱게 물들어가는 것이 아주 보기 좋다. 불타는 것 같은 붉은 단풍이 절정인 단풍나무 한그루, 샛노란 은행나무 한그루도 보기 좋지만 자연스럽게 여러 빛깔이 어우러진 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즐거움도 이 가을에 우리가 누리는 행복 가운데 하나이다.
수의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 World Organisation for Animal Health)직원들이 자신들의 업무 소개를 위해 자주 사용하는 슬라이드 사진이 있다. ‘Veterinary services are global public goods’라는 제목 아래, 지구 사진을 중심으로 빈곤퇴치 기여, 식품안전 확보, 동물위생 향상, 공중보건 보호, 동물복지 향상, 생물학적 위협 차단 등 수의업무가 인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열거된 사진이다. 수의사 역할의 공익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꼭 필요하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수의업무의 많은 분야에서 국제공동연구, 국제공동프로젝트,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등이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국제기구들이 관여하고 있으며 다양한 국적의 수의사들이 일선 업무를 담당하여 일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 수의사들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World Friends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또한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 채용 등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많은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국제기구인 OIE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선배 수의사로서 국제적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젊은 수의사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본다.
현재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수의사들은 최소 4명 이상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 (FAO),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등에서 일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국제기구에서 수의사들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한 예를 들자면 세계은행(World Bank)에 소속된 수의사들은 아프리카의 최빈국 등을 대상으로 국제적인 경제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 중 축산 및 가축질병에 관련된 기획과 실행에 수의사들이 관여되어 있다. 하지만 고용된 수의사들이 많지는 않다.
국제승마연맹(FEI: Fédération Equestre Internationale)에도 수의사가 있다. FEI는 지역을 달리하며 연중 이어지는 국제대회 등 승마관련 행사를 주관하는 국제기구인데, 수의팀에 소속된 수의사들이 말의 위생, 검역 등에 관련된 사항을 담당하고 있다. FEI는 최근 OIE와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승마용 말들의 국제적 이동을 보다 자유롭게 하려는 방향으로 많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FEI 수의사들의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그 외에도 동물약품, 식품안전, 공중보건, 동물복지, 야생동물 등과 관련된 여러 국제기구에서 수의사들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기구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 수의사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은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직장이나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기 위해서는 채용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날로 좁아지는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그 곳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 기준에 맞추어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는 국제기구도 마찬가지다. 물론 각 국제기구마다 특성에 맞게 특화된 자격과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 많은 수의사들이 일하고 있는 FAO, OIE 등에서 요구하는 조건에는 공통적인 부분이 많다. 이를 기준으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먼저 국제기구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의사들이 일하고 있는 국제기구인 FAO는 국제연합 소속으로 급여나 복지 등이 OIE와 같은 정부간 기구 등에 비해 우수한 편이다.
FAO소속의 수의사들은 로마에 있는 본부의 동물생산․위생과(Animal Production and Health Division) 또는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등 5개 지역사무소 등에서 활동하게 된다. 본부에서는 프로그램의 기획, 교육, 국제적 협력 등의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지역사무소에서는 지역내 회원국에서 프로그램이 수행되도록 실무적인 업무를 많이 담당한다. 프로그램에 따라 특정 회원국내의 FAO 사무소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업무의 성격상 가축을 포함한 동물들을 직접 진료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기획서 작성, 국제회의 준비 및 진행, 교육, 보고서 작성 등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국제기구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원하며, 채용공고에 업무 특성과 함께 자격 요건을 게재하여 적합한 후보자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평소에 관심 있는 국제기구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그 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업무도 둘러보고 채용공고도 살펴보면 해당 국제기구에서 원하는 인재상을 파악하고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해를 돕고자 최근 FAO에 게시된 채용공고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해당 채용공고 확인하기)
로마의 FAO 본부 동물생산․위생과에서 ‘Junior Animal Health Consultant’를 채용하기 위해 공고를 했다. 근무기간은 11개월이고, 11개월 연장이 가능하다고 되어있는데, 대부분의 국제기구는 직원들과 일정기간 단위로 고용계약을 하고 연장을 하며 근무기간 동안 다른 자리로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공고에 표시된 짧은 근무기간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공고문에서는 먼저 업무 내용과 목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동물위생연구 컨소시엄에 대한 FAO의 참여와 관련된 사항, 동물위생과 관련된 기술적인 문서의 초안 작성, 국제회의 및 교육 기획 및 진행, 프로젝트 기획안 개발, 질병 발생정보 수집, 동물위생 데이터의 통계적 분석, 국제회의 참석 등이 주요업무다.
업무 소개 밑에는 후보자의 최소 요건이 적혀 있는데, 수의과대학 졸업 및 관련 학위 (수의 역학, 공중보건, 전염병의 예찰과 방제, one health 등), 2년 이상의 국가/지역(아시아 등) 또는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관련 업무 경력, 영어로 업무할 수 있는 능력 및 다른 언어 (프랑스어, 아랍어, 중국어 또는 러시아어) 가운데 하나에 대한 지식, 컴퓨터 및 워드 능력 등을 요구하며 위치정보시스템(GIS)이나 통계분석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우대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후보자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첫째, 수의사로서 전문적인 전공지식을 갖추고 특히 역학, 전염병 등과 관련하여 국제적인 동물 질병 발생 상황 등에 폭넓게 관심을 갖고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 석사 또는 박사학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는 않는다.
둘째, 국제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그 수단이 되는 언어 능력을 요구하며, 앞서 소개한 것처럼 업무의 대부분이 쓰고 말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므로, 공통언어인 영어는 이러한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수준을 요구하고, 다른 언어도 하나 이상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선호한다. 실제적으로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수의사들 상당수는 3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므로, 이에 맞게 언어능력을 연마하는 것이 좋으며, 제3의 언어로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나 공급은 많지 않아 희소적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아랍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셋째, 대부분의 채용 공고가 경력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 KOICA 등 국제협력 프로그램 참여, 공무원으로 근무 등 조건에 맞는 경력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야 한다.
넷째,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국제기구는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므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활히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가능한 한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거나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신의 협업 능력도 기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국제기구에 채용되어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나, 관심을 갖고 능동적으로 준비해 나간다면,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는 올 것이다. 그 곳에서 대한민국 수의사로서 열심히 일하며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수의사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큰 꿈을 품고 도전하는 젊은 수의사들에게 성원의 박수를 힘차게 보내니, 혹시라도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