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용마취제 납치사건 일당 징역형···약국 통한 마취제 구입 아직도 합법

수의사 처방 없이 약국 통해 동물용마취제 구입 가능..제2의 범죄 가능성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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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한 30대 남성이 2:2 소개팅에 나갔다가 납치·감금을 당한 뒤 극적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 A 씨는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알게 된 조 씨(38세, 남)로부터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 나갔다가 정신을 잃고 납치됐다. 당시 조 씨는 술잔에 동물용마취제를 타는 수법으로 A 씨의 정신을 잃게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이번 사건의 일당인 조 모 씨와 최 모 씨(35세)에 대해 각각 징역 4년과 6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조 씨와 최 씨는 동물마취제로 A 씨의 정신을 잃게 한 뒤 현금, 휴대전화, 신용카드를 챙기고 렌터카를 이용해 A 씨를 빈 장소로 옮겼다. 이들은 A 씨를 청테이프 등으로 결박하여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으며, 그의 가족에게 몸값 5천만을 요구하기로 하고 A 씨를 렌터카 트렁크에 태워 이동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씨가 극적으로 결박을 풀고 도망치면서 26 시간의 기나긴 감금이 끝나게 됐다.

재판부는 “범행 도구와 감금 장소를 미리 마련하는 등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범행한 점을 고려해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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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직후 A씨의 사진

문제는 이처럼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동물용마취제를 누구나 쉽게 동물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 2, 제 3의 동물용마취제 납치사건이 발생할 여건이 합법적으로 허용되어 있는 것.

이번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서 강력계 담당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해당 동물용마취제를 일반인이 구입하는 것이 합법이라 처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동물용마취제가 범죄에 사용되었지만 마취제를 구입한 것에 대한 조치는 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동물용의약품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수의사 처방제’가 2013년 8월 시행됐지만, 약국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중 주사용 항생제와 주사용 생물학적제제(백신)만 수의사 처방전에 따라 판매하고, 나머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은 일반인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팔 수 있다.

이는 약사법 제85조에 ‘수의사처방제 약국예외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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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처방제 약국예외조항

이러한 약국예외 조항 때문에 동물용마취제와 호르몬제 등이 모두 동물약국에서 일반인에게 합법적으로 팔리고 있다.

수의사의 처방전도 필요 없으며, 동물을 키우지 않아도 상관없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에게 사용할 거라고 말하면 누구나 합법적으로 구매 가능하다. 물론 해당 약품이 실제로 어디에 사용되는 지는 당연히 알 수 없다.

수의사처방제 시행 전에도, 동물용마취제가 범죄에 악용된 적은 종종 있다.

지난 2009년, 광주광역시에서 여성에서 동물용마취제를 먹여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사건이 발생했다. 범죄에 사용된 약품 역시 이번 납치·감금에 사용된 약품과 동일한 동물용마취제였다. 당시 해당 사건을 취재한 언론사 기자는 동물약국에서 해당 제품을 쉽게 구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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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론사의 동물용의약품 관련 기사. 서울시내 한 동물약국에서 수의사 처방전 없이 동물용마취제 2종을 쉽게 구입했다. 그 중 하나는 이번 사건에 사용된 제품이다.

수의사 처방제는 ‘호르몬제 및 항생제 등 동물용 의약품의 오·남용에 따른 내성균 출현과 동물·축산물에 약품의 잔류 등을 예방하여 축산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국민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됐다.

정부는 2017년까지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품목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기 때문에, 수의사 처방제 시행 단계에서 선정된 97개 성분은 기본 중 기본이다. 97개 성분에는 당연히 동물용마취제와 동물용호르몬제 전체가 포함됐다.

그러나 이 모두를 동물약국에서는 수의사의 처방전 없이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수의사 처방제의 가장 큰 구멍이 동물약국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보건 향상이라는  ‘수의사 처방제’ 본연의 목적을 위해 ‘수의사 처방제 약국 예외조항’이 하루 빨리 삭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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