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반려동물병원은 무한 경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수의사·동물병원의 폭발적 증가, 신규 개원입지 포화, 보호자 기대수준 향상, 경기불황 등이 동물병원 경영을 점차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병원 경영 여건 악화는 비단 수의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료계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비슷한 문제를 겪으며 병원 경영의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진료과목의 전문화’가 급속도로 이뤄졌습니다.
이미 내과,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신경과 등 전문의 제도가 도입되어 있는 인의 쪽에서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더욱 전문화하고 있습니다. 성형외과의 경우 지방흡입전문, 모발이식전문, 얼굴뼈 전문에 이어 다크서클 전문 성형외과까지 등장 할 정도입니다.
특정 전문 진료 과목에 초점을 맞춘 전문병원이 모든 진료과목을 다루는 종합병원보다 경영 효율성 개선에 훨씬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임상 수의계를 돌아보면, 아직 전문의 제도는 없지만 임상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수의사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사실상 특정 진료 분야 전문 수의사(전공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의계도 이제 모든 진료과목을 다루는 동물병원보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자신있는 분야에 집중하여 그 진료 과목을 특화시킨 ‘전문진료 동물병원’ 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에 따라 데일리벳에서 특정 진료과목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전문진료 동물병원’을 탐방하고, 원장님의 생각을 들어보는 ‘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를 시리즈로 준비했습니다.
그 열번째 주인공은 지난 1월 2일 문을 연 `이비치 동물치과병원`의 김춘근 원장님입니다. 한국수의치과협회장이기도 한 김춘근 원장님은 이전 태일동물종합병원에서도 치과 진료에 집중해왔는데요. 치과와 구강외과, 악안면외과 진료에만 집중하는 동물병원을 새로 개원했습니다.
“아시아 최고의 수의치과병원을 목표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나선다”고 말하는 김춘근 이비치 동물치과병원장을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Q. 2일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 치과전문 동물병원을 개원했다. 동물병원 로고에도 치아 모양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비치’라는 동물병원 이름은 어떻게 지은 것인가?
‘이가 빛이 난다’는 뜻의 이름이다. 병원 개원을 앞두고 선후배 수의사들과 지인들에게 공모를 해서 얻은 이름이다.
Q. 치과 전문으로서 다른 과목의 진료는 전혀 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 치과, 구강외과, 악안면외과 등 3가지 과목 진료만 한다.
이 병원에는 치과 관련 장비와 약재 이외의 것은 준비해두지도 않았다. 정말 타 과목의 진료를 받길 원하는 보호자가 있다면 전 병원인 태일동물종합병원으로 안내할 것이다.
용품도 치약, 칫솔이나 구강 관련 보조제품 정도만 취급할 계획이다. 이것도 판매보다는 보호자들에게 소개해서 지역 동물병원을 통해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용도다.
Q. 태일동물병원을 운영할 때도 치과 관련 진료의 비중이 높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60~70% 정도가 치과 진료였다.
치과 진료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치주치료와 신경치료, 보철, 치아수복, 교정, 악안면 부분의 종양이나 외상에 대한 구강외과 진료 등으로 구성된다. 케이스 자체는 치주염이나 고양이 구내염, 이가 부러진 환자에 대한 신경치료 등이 가장 많다.
Q. 그렇다면 이전 동물병원에서도 치과 진료 비중이 높았음에도 ‘치과 진료만 하는’ 이비치 동물치과병원을 따로 개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위치적인 문제가 있었다. 태일동물병원이 쌍문동에 있다 보니 지방이나 타 지역에서 찾아오기가 힘들었다.
치과 진료의 절반 이상이 타 동물병원에서의 의뢰나 타 지역 보호자가 멀리서 찾아오는 케이스였다. 하지만 그 때마다 ‘멀어서 힘들다’는 컴플레인이 심했다. 수도권이라고 해도 수원이나 인천에서 오려면 한참 걸린다. 강남이다 보니 접근성이 좋아져서 그동안 멀리 태일동물병원을 다니던 보호자들도 좋아하신다.
또한 나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치과 진료만 전문적으로 보는 동물병원을 개원하는 것이 내 꿈이었다.
주변에 다른 동물병원도 많지만 일반적인 병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 동료 수의사들에게도 피해를 주기보단 좋은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전문 병원인 만큼 일반 동물병원과 운영방식에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철저한 예약제로만 운영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일요일은 휴무다.
그냥 찾아오는 보호자가 있다면 건강검진, 마취 전 검사 등 진료준비를 진행하고 차후 진료일정 예약을 잡는 쪽으로 진행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치과수술은 시작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마취 후 치과 방사선 검사와 구강검사를 해봐야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 수 있고, 다시 마취하는 일을 막기 위해 바로 수술적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진료에 소요되는 시간이 들쑥날쑥하다.
게다가 대부분 어려운 케이스들이 의뢰되는 편이라 수술 시간이 4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늘 수술한 고양이도 치주염과 구내염으로 장기간 고통 받다가 온 케이스였다. 마취 후 검사해 보니 모든 치아를 발치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술시간도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치과의 경우 교통사고 등 응급 케이스가 아니라면 하루 이틀 안에 크게 상황이 변화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악화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예약제를 운영하는데 더욱 적합한 부분이 있다.
Q. 새로 치과전문 동물병원을 개원하면서 발전한 부분은 무엇인가?
치과 진료를 위한 장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덴탈유닛을 포함한 치과 수술설비 세트를 2개 준비하고, 구강외과 수술을 집도할 별도의 수술실도 추가로 마련했다.
덴탈유닛은 국내에는 없는 장비를 외국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수술설비 구성에만 2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치과 진료 역량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유능한 수의사를 추가로 영입할 계획도 있다.
이비치 동물치과병원은 수술실, 진료실, 회복실 등을 포함해 35평 정도 규모다. 수의사 2~3명과 테크니션 2명, 코디네이터 1명으로 스탭을 구성할 계획이다.
Q. 치과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치과진료 역량을 키우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
치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였다. 당시 스케일링을 하던 중에 흔들리지도 않았던 치아의 치근 분기부에 조그만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고 ‘왜?’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이것 저것 찾아보다가 관심이 생겨서 수의치과의 길을 계속 걷게 됐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국내에 이렇다 할 교재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마땅치 않아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2002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웨스턴 컨퍼런스에 가서 치과와 관련된 여러 가지 힌트를 얻게 됐다. 청사진을 그릴 수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석, 박사 과정을 거쳤다. 2008년과 2012년에는 미국 UC Davis의 dentistry & oral surgery service에 방문해 1달여씩 수련을 받기도 했다.
평소 내 철학은 임상수의사로서 임상활동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페이퍼워크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경험이 내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고 객관적으로 문서화 함으로써 다른 수의사들이 도움을 받게 만들고 싶다.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수의사들과도 임상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지금도 수의치과와 관련된 논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동물병원협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SCI급 논문 2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Q. 앞으로 치과진료 시장이 커질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수의치과협회에서 보호자를 대상으로 구강교실 등을 개최함으로써 치과 상식이 전파되도록 힘쓰고 있다. 그러면서 보호자들의 니즈가 생겨야 한다. 이 니즈에 부합하기 위해 수의사가 노력하게 됨으로써 수의치과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다.
치과가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갖는 장점도 여기에 있다. 보호자를 교육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치과 관리는 눈에 잘 보이며, 보호자들도 사람의 경우에 대비해 그 필요성을 잘 공감한다.
사실 보호자가 반려동물의 건강을 위해 집에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유심히 살펴보는 정도다. 하지만 치과는 하다 못해 이를 닦게 할 수 있지 않나. 다른 어떠한 진료과목보다도 더욱 친밀한 보호자 관계를 맺을 수 있다.
Q. 한국수의치과협회 회장직도 역임하고 있다. 올해 협회의 활동계획은 어떠한가?
기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후원사와 함께 보호자 대상 대도시 순회 교육을 이어갈 예정이다.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실습교육도 지난해와 같이 2회가량 진행할 것이다.
특이점으로는 오는 11월에 ‘아시아수의치과포럼’을 개최할 것이다. 작년까지 ‘한국수의치과포럼’이었던 학술대회 명칭을 아시아수의치과포럼으로 변경하고 그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해외 초청연자도 모시고, 아시아 각국의 수의사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준비할 생각이다.
Q. 지난 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 시리즈 중 메이동물병원 권대현 원장님은 “차후에는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치과진료만 보는 동물병원을 운영하기는 힘들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치과만 보는 동물병원 성공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그 시점과 지금 사이에 변한 건 없다.
하지만 이미 7, 8년 전부터 치과진료만 보는 동물병원을 개원하기 위한 계획을 준비해왔다. 그러다가 개원할 타이밍이 지금 맞아 떨어진 것이다. 특화된 동물병원을 개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자 하고 싶었던 일이다. 내가 먼저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Q.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동물치과병원 개원이 작은 일이지만 수의사들이 서로 상생하여 한국 수의학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반려동물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고통 없는 삶을 사는데 기여함으로써 반려동물과 보호자들이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시아 최고의 수의치과병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다.
또한 수의치과에 관심이 있는 수의사들이 우리 병원에 와서 레지던트쉽과 같이 장기간 근무하면서 수련하고, 논문 발표와 같은 학술적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고 싶다. 이를 통해 국내 수의치과 저변을 확대하고 그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