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찬 변호사의 법률칼럼②] `물건인 듯 물건 아닌 물건 같은`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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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찬 변호사·수의사

이번 칼럼에서는 수의사의 진료상 주의의무와 설명의무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주의의무와 설명의무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개념이 있다. 바로 ‘동물의 법적 지위’ 문제다.

동물의 법적 지위 문제는 사법상 동물이 의료소송에서 위자료 청구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동물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 등과 공법상 동물의 사육환경, 동물 운송, 실험동물, 도축방법 등에 대한 규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본 칼럼에서는 논의의 범위를 ‘반려동물의 법적지위’로 조금 축소해 보자.

주지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단순한 ‘물건’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감정과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때로는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반려동물을 단순한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 타당할까? 동물은 책상과 같이 일반적인 물건으로 취급 받아도 되는 존재일까?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인간과 물건이라는 2분법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반려동물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물건’에 해당한다. 민법 제98조(물건의 정의)는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有體物)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려동물은 위 민법 제98조 중 ‘유체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당연히 물건이 맞다.

    

그렇다면 법원은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타인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반려동물이 다친 경우의 손해배상소송이나 의료과오에 의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은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먼저 반려동물이 아닌 일반적인 물건에 해당하는 의자나 책상이 타인의 불법행위에 의해 훼손되거나 멸실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경우 손해배상은 원칙적으로 물건의 훼손·멸실된 당시의 수리비나 교환가격에 한정되는데, 이를 ‘통상손해’라고 한다. 통상손해 책정 시 수리비가 물건의 교환가치를 초과할 때에는, 그 손해액은 ‘형평의 원칙’ 상 물건의 교환가치 내로 제한되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훼손 당시 100만원 가치의 물건에 대하여 수리비로 150만원을 배상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훼손·멸실된 물건이 소유자에게 특별한 가치가 있을 경우 소유자의 정신적 고통도 문제될 수 있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재산적 손해의 배상에 의하여 정신적 고통도 회복된다고 본다. 만약 재산적 손해배상으로도 회복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 있다면, 이는 ‘특별한 손해’이다.

그런데 민법 제393조(손해배상의 범위) 제2항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법행위자가 그 물건이 소유자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를 배상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불법행위자는 그러한 사정을 몰랐거나, 알 수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물건의 훼손∙멸실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배상 받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하는 물건이 ‘반려동물’일 경우 법원은 조금 다른 태도를 취한다. 반려동물은 실질적 교환가치 이상의 치료비가 인정되는 것이다. 나아가 법원은 반려동물 소유주의 정신적 고통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고 하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인정하고 있다.

동물이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반려동물 소유주와 정신적인 유대와 애정을 나눈다는 점에서 동물을 ‘단순한 물건’이 아닌 ‘특수한 물건’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동물보호법 제8조에서 ‘동물학대 등의 금지’를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동법 제46조에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동물을 단순한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다른 나라들은 ‘동물의 법적지위’에 대하여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민법은 이미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사람과 물건 그리고 동물로 분류하는 3분법적 체계를 확립한 것이다.

이는 약 2,000년 동안 유지되었던 물건의 개념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였다. 나아가 위 나라들은 동물의 교환가치 이상의 치료비 청구를 인정하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위와 같은 움직임이 없었을까?

법무부 산하 제3기 민법개정위원회는 민법 제98조의 2(동물의 법적지위) 및 민법 제752조의 2(동물의 살상시 손해배상)를 추가한 시안(試案)을 민사법학회에서 발표하였다. 위 조항들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선언적 규정과 함께 동물 교환가치 이상의 치료비 배상책임을 포함하고 있다.

아쉽게도 민법 개정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논의가 있었다는 자체가 우리 사회가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진일보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 현행법 체계 하에서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를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유행가 가사처럼 ‘물건인 듯, 물건 아닌, 물건 같은 반려동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

    

※ 참고문헌

박정기,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 2010.

윤철홍,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입법론적 고찰, 2011.

윤철홍, 독일 민법상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소고, 2011.

윤철홍, 애완견의 사망시 손해배상청구의 주체와 배상범위, 2013.

배기석․배소민판례평석-애완동물 관련 손해배상 문제의 한․일 판례 동향, 2012.

김민동, 수의사의 애완동물 수의료과오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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