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미국수의사 면허 취득 과정(PAVE, ECFVG)／윤은상 수의사

처음 후배가 기고문을 처음 부탁했을 때 과연 제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먼저 간 선배들이 많은 경험과 노력을 바탕으로 닦아놓은 길 덕분에 조금 더 수월하게 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혹여 제가 글을 쓰는 것이 오만한 처사는 아닐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러한 기고문을 쓰는 것이 저의 뒤를 이어서 따라올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선배로서의 도리이자 제가 받은 도움을 베푸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2009년 봄 본과 1학년을 마치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1년간의 경험으로, 저는 호주 현지인들의 자연보호주의와 동물 애호사상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호주 멜버른에 있던 1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식품접객업에 종사하며 보냈지만 다양한 사람도 만나고 호주 현지인들의 사고방식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예비 수의사로서 그들의 자연보호주의와 동물애호사상에 매료 된 후에 미국 수의사로 일하고 있던 선배의 세미나를 듣고 더욱 확신이 생겼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수의사 면허 취득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수의사 면허 취득 과정은 크게 ECFVG(Educational Commission for Foreign Veterinary Graduates)와 PAVE(Program for Assessment of Veterinary Education Equivalence)로 나뉩니다.

두 과정 모두 미국수의사회(AVMA)의 인증을 받지 않은 외국 대학을 졸업한 수의사들에게 미국 내 수의 의료행위를 위한 면허를 교부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ECFVG는 미국수의사회(AVMA)에서, PAVE는 미국수의학이사회(AAVSB)에서 인증해 줍니다.

ECFVG 인증은 모든 주(州)의 면허관리국과 연방,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인정됩니다.

PAVE의 경우 40개의 주와 호주, 뉴질랜드에서 인정받고 있는데 이는 외국 졸업생들의 임상 기술과 지식 수준이 미국수의사회 인증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과 동등한지 여부를 인증하는 것입니다.

두 과정 모두 4개의 평가 절차를 밟게 되는데 두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에 제가 진행한 PAVE과정을 기준으로 각각의 절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절차 1 – 등록 (Enrollment)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등록한 뒤 온라인으로 지원하며 PAVE의 세 번째 절차인 QSE(Qualifying Science Exam)의 신청 기간에 맞춰 지원자를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등록비와 함께 몇 가지 증명 서류를 요구합니다. 증명 서류는 모두 우편으로 보내야 하며 국제배송이 완료하는데 시간이 걸리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CFVG과정과 PAVE과정 모두 첫 번째 절차를 ‘등록 및 졸업 증명’으로 규정하며 첫 번째 절차가 완료되지 않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 절차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두 번째 등록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경우 마지막 절차인 임상기술평가(Clinical Skill Assessment)를 진행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등록절차는 길게는 2달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절차 2 – 영어 능력 검정 (English Proficiency)

모든 지원자의 경우 일정 수준의 영어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PAVE과정에서는 iBT-TOEFL과 IELTS의 두 가지 시험 중 하나를 선택해 이를 증명해야 합니다.

두 시험 모두 커트라인이 높아서 쉽지 않았지만 제 경우 특히 말하기 부문 점수를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문제도 복잡하고 컴퓨터에 녹음해야 하는 iBT-TOEFL보다는 직접 외국인과 대면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IELTS시험을 통해서 통과 점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중고등교육(secondary school)을 받은 사람의 경우라면은 이 과정은 면제됩니다.

절차 3 – 기초과학 자격시험 (Qualifying Science Examination)

세 번째 절차에서는 기초 수의과학에 대한 지식을 평가하게 됩니다.

학부과정을 최소 50%이상 수료한 사람에게 응시자격을 주고 있으며 1년에 3회 응시 기회가 있습니다. 저는 본과 3학년 1학기에 본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한국에도 시험지소가 있으며 시험은 컴퓨터로 진행됩니다.

전문적인 임상지식보다는 미생물학, 생리학, 해부학 등 기초 수의학에 관련된 문제로 구성된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시험에 도움을 주는 사이트들이 있지만 저는 학교 기초 교재들과, 선배들이 추천한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공부했습니다.

관련 홈페이지에 더 자세한 내용과 기출문제들이 나와 있으니 AAVSB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CFVG의 경우에는 PAVE의 세 번째 절차인 QSE와 유사한 BCSE(Basic and Clinical Science Exam)를 통과해야만 절차가 완료됩니다.

절차 4 – 임상 숙련도 평가 (Evaluated Clinical Proficiency)

PAVE와 ECFVG과정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PAVE 지원자는 미국수의사회(AVMA) 인증 대학에 지원해 4학년 학생들과 함께 52주 간의 임상실습과정에 참가하게 됩니다. 이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모든 절차를 완료해 PAVE 수료증(certificate)이 주어집니다.

PAVE 지원자들을 받아주는 미국 내 대학은 현재 6곳이며 대학마다 응시조건과 학생비자 지원 여부가 다르므로 이메일이나 각 대학의 홈페이지 등을 통한 개인적인 확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지원절차는 모두 본인이 진행해야 합니다.

PAVE 과정에 지원한 저의 경우, 루이지애나주립대학(LSU)에 작년 11월에 지원하여 올해 5월부터 시작하는 임상실습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ECFVG 과정의 경우에는 학교에 지원하는 대신 CPE(Clinical Proficiency Exam)라는 실습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미국의 특정 지역에서 3일동안 실습시험을 치르게 되며 통과하면 미국 수의사회에서 수료증(certificate)이 주어집니다.

PAVE/ECFVG 수료증(certificate)은 미국 수의사 면허증(license)과는 다릅니다.

면허증 취득을 위해서는 미국 수의사 면허시험(NAVLE)에 응시하여야 하며 QSE/BCSE를 통과한 경우에 응시자격이 주어집니다. 제 경우에는 2013년 학교 졸업 후에 그 해 4월에 응시했습니다.

시험은 한국에서 볼 수 있었으며 국가고시를 본 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에 공부하기에는 수월했지만 한국 시험과는 출제경향의 차이가 있으므로 따로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면허시험에 대비하여 벳프렙(Vetprep)이라는 모의문제풀이 웹사이트와 NAVLE 기출문제집을 보면서 공부하였고 한국 국가고시에서 공부했던 내용 역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PAVE 과정을 선택하기 쉽지 않았고 진행에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아직 모든 절차를 끝낸 것이 아니기에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 수의사를 위해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두 가지를 말해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학교공부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QSE/BCSE부터 NAVLE까지의 과정은 정규 학부과정에서 배우는 거의 모든 과목을 연계해 평가하기 때문에 어떠한 과목도 소홀이 할 수 없으며 시험을 준비할 때 각 과목의 수업자료들이 유용합니다.

두 번째는 방학을 활용해서 실험실이나 병원 실습에 참여해 보라는 것입니다. PAVE과정의 대학 지원 시에는 이력서와 추천서 등이 필요하며 다양한 병원 실습경험과 실험실 경력이 있다면 유리합니다. 여건이 된다면 여기에 외국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습니다.

제 경우 임상병리 실험실에서 1년 동안 실습했던 경험이 전공분야 지식 축적뿐만 아니라 미국 수의사 지원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 담당 교수님의 지도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학문에 대한 전반적인 시야를 넓히고 훗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