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사람·동물·환경 통합 인수공통전염병 방역 필요

신종전염병 대부분이 인수공통전염병..원헬스(One-Health) 입각한 관리체계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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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전국이 큰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국가 방역 정책을 ‘사람과 동물의 공중보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개선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메르스뿐만 아니라 사스(SARS), 에볼라출혈열, AI 등 발생했거나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신종 전염병의 대부분이 인수공통전염병이기 때문에 사람과 동물의 방역을 서로 별개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국내에서 새롭게 발생했거나 해외에서 국내로 유입이 우려되는 신종전염병으로 규정한 18종의 제4군감염병은 모두 인수공통전염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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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공통전염병 증가에 따라 방역시스템도 진화해야

전염병 방역은 국방과 함께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안전보장’을 위한 필수요소다.

역학을 바탕으로 한 방역체계는 환자를 조사하여 감염경로를 파악하고 환자와 감염원을 최대한 신속히 격리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1854년 콜레라가 창궐한 영국 런던에서 존 스노(John Snow) 박사가 환자발생 지역을 지도에 표시함으로써 그 예방책을 찾아낸 것이 시초다.

하지만 바이러스나 세균 등 병원체가 사람뿐 아니라 가축이나 야생동물을 통해 전파된다면 질병 발생 양상은 훨씬 복잡해진다.

숙주가 되는 동물의 이동범위를 따라 전염병이 더 쉽게 전파될 수 있다. 병원체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동물이 존재할 경우 해당 질병을 완전히 근절하기도 어려워진다.

즉 인수공통전염병의 방역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방역 외에도 질병 특성에 따른 여러 매개체 관리를 포함한 입체적 방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종 전염병 대응에 지리정보기술 등 최신 기술을 적극 도입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러스감염대응연구단 나운성 박사는 “조류나 곤충을 통해 전염이 일어나는 경우 전혀 예상치 못한 경로로 질병이 확산될 수도 있다”며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서는 국내에 전파 가능한 전염병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미리 대응 백신을 개발하는 등 예방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람과 가축뿐 아니라 야생동물 등 생태계에 대한 감시 역시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인수공통전염병에 의해 야생동물이 집단 폐사하는 등 생태계의 이상 징후를 빠르게 파악함으로써 사람이나 가축으로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종 전염병 발생 상황에서는 해당 질병을 공유하는 동물을 확인하는 것이 원인체 파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의 웨스트나일열 사태를 들 수 있다. 최초 발생 당시 미국 보건당국은 병원체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때 뉴욕시 브롱크스 동물원의 병리 수의사였던 트레이시 맥나마라(Tracy McNamara)가 떼죽음을 당한 까마귀와 동물원의 다른 조류를 조사한 끝에 웨스트나일바이러스임을 밝혀냈다.

*웨스트나일열(West Nile Fever):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가 원인체로 사람에서 급성 뇌염을 일으킨다. 사람뿐 아니라 말이나 야생조류에도 감염되는 인수공동전염병이다. 1937년 우간다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미국에서는 1999년 처음 발생하여 2012년 한해에만 289명의 사망자를 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4종감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동물질병 연구가 ‘가래로 막을 일 호미로 막는 비결’

한편 신종 인수공통전염병의 등장과 관련해 학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동물이 있다. 바로 박쥐다.

박쥐는 최근까지 유행한 여러 신종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로 알려져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 헨드라 바이러스, 니파 바이러스 등이 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에도 낙타가 대표적인 숙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연구 결과 본래 박쥐에 존재하던 바이러스가 낙타로 옮겨가면서 사람에서도 질병을 일으켰다는 설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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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사태로 유명세를 치른 과일박쥐

브라이언 에반스(Brian Evans)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부사무총장은 지난 9일 농림축산식품부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생태계 파괴와 기후 변화 등으로 전에 없던 야생동물-사람, 야생동물-가축 간의 접촉이 증가하고 있다”며 ”박쥐 뿐 아니라 다른 야생동물로부터 신형 변종 전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20년간 새로 발생한 전염병의 70% 이상이 인수공통전염병인 것으로 밝혀졌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야생동물의 생태와 질병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인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환경부가 최근 국립야생동물보건연구원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관련 연구가 타 선진국에 비해 미진한 편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나운성 박사는 “메르스가 국내에 처음 발생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메르스에 관해 발표된 논문은 1건에 불과하다”며 “중동의 낙타에서 발생하는 질병이 우리나라에 퍼질 만큼 전염병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다양한 동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종 전염병 발생시 자연 숙주인 동물의 생태와 병이 발생하는 기전을 알고 있다면 방역 대책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며 “수익이 발생하기 어려운 분야인 만큼 대학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람, 동물, 환경 분야 전문가 모인 ‘드림팀’ 만들어야

세계적으로 인수공통질병의 위협이 커지는 가운데 이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보건 당국이 인플루엔자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철새의 이동경로도 파악해야 한다. 기후가 변화하면 모기가 전파하는 전염병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람의 보건과 동물의 보건, 환경의 문제가 별개가 아니라는 이른바 원헬스(One Health)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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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는 의사회, 수의사회, 공중보건학회 등 전문가 단체와 질병관리본부, 농무부, 환경부 등 정부기관이 원헬스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고 분야간 교류를 원활히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국제기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 세계보건기구(WHO), 식량농업기구(FAO) 역시 2010년대 들어 인수공통전염병 예방 및 위험관리를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2년에는 세계 은행이 원헬스 개념이 공중보건 분야에 미치는 편익을 분석하여 발표하는 등 다른 국제기구 역시 협력을 늘려갈 전망이다.

브라이언 에반스 OIE 부사무총장은 ”어느 한 분야의 전문지식만으로는 생태적 요인,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신종 전염병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위기 의식이 분야를 넘나드는 협력을 이끌어낸 요인”이라며 “우리가 생각하는 건강은 사람과 동물과 환경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HEALTH=Humans, Ecosystems, Animals Living Together Harmoniously)”이라고 밝혔다.

김재영 대한수의사회 동물보호복지위원장은 “우리나라도 의사, 수의사, 보건전문가, 야생동물 관리자, 생태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기관들이 힘을 모아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예방 질병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 때만 대책위를 구성할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원헬스 전략을 담당할 국가기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수의학계의 적극적인 대응 필요해

향후 공중보건 분야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에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특히 동물에 관해 전문성을 가진 수의사 집단에서 공중보건 전문가를 더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나운성 박사는 “수의사는 기본적으로 학부 과정 동안 동물의 기본 생리와 병이 발생하는 기전, 그 때 사용할 수 있는 약물에 대해 모두 배우기 때문에 이는 신종 전염병 발생시 사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데 큰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인수공통전염병의 유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각 동물 종의 특징을 빠르게 이해하고 방역대책을 세우는데 수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김재홍 학장은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질병관리본부, 검역본부 등 실제 공중보건 업무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실습 기회를 늘리는 등 수의학 교육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공중보건 분야에 젊은 수의사와 수의대생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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