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학회·세미나·연구회,문제없나요?

업체부담 증가에 학술대회 간 빈부격차까지 심해...대화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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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일요일. 수원에서 제3회 경기도수의사회 컨퍼런스와 경기도 반려동물어울림 한마당이 개최됐다. 광주에서는 한국고양이수의사회 추계컨퍼런스가 열렸다. 울산에서는 울산시수의사회 주최 제2회 울산 반려동물 어울림 한마당이 열렸다.

수의 관련 업체 A사는 4개 행사에 모두 부스를 차렸다. 한 부스 당 최소 2~3명의 직원이 필요하므로 일요일에 10명 넘는 직원이 전국 각지로 떠났다. 인력 부담으로 직접 부스 참가하지 못한 업체 역시 지면 광고 형식으로 각 행사를 후원했다.

11월 8일 일요일. 서울에서 서울시수의사회 5차 연수교육이 열렸고, 대전에서 한국임상수의사 학술대회(KAHA 추계컨퍼런스)가 개최됐으며, 부산에서는 부산시수의사회 주최 ‘부산유기동물가족만나기’ 행사가 진행됐다. 또한 일산 KITEX에서는 ‘대한민국펫산업박람회(케이펫페어, K-Pet Fair)’가 개최됐다.

또 다른 수의업체인 B사 역시 이 모든 행사에 참여했다. 일부 직원은 평일에 일산에 갔다가 일요일에 부산까지 내려오기도 했다. 업체 입장에서는 수의사회가 주최하는 행사도 참여해야 하지만, 반려동물 시장 확대를 위해 소비자(보호자) 행사까지 참여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11월 6~8일 일산 KINTEX에서 개최된 케이펫페어에는 비가 오는 날씨 속에서도 수만 명의 사람이 다녀갈 정도로 큰 성황을 이뤘다. 케이펫페어에 처음 참가한 수의 관련 업체 C사 관계자는 “3일 내내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며 “앞으로도 보호자 대상 행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수의사 행사의 경우 대부분 학술대회 형태이기 때문에 강의가 시작되면 부스가 텅 빈다. 거기에 연수교육 시간을 채우기 위해 1년에 몇 번 지부수의사회 연수교육에만 참가하는 임상수의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많은 학술대회에서 업체가 만나는 수의사는 늘 비슷하다. 학술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수의사들만 계속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신제품을 홍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업체 입장에서는 특별히 알릴 것이 없기 때문에 그저 부스를 지키고 앉아 부스를 방문하는 수의사들과 안부를 주고받고 제품 샘플을 전달한다. 늘 같은 형식이다. 이를 위해 주말마다 짐을 꾸리고 부스를 설치하고 제품 샘플을 준비해야 한다.

연수교육의 경우, 일부 교육을 제외하면 오전에 출석체크만 하고 많은 수의사들이 강의장을 떠난다.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연수교육 시간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에서 “교육에 등록된 수의사 숫자는 많지만 실제 부스를 둘러보는 수의사는 거의 없다”는 불맨 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병원 실습 중인 학부생을 보내 연수교육을 대리출석하는 경우까지 있으니 업체입장에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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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케이펫페어 현장. 평일에도 수많은 사람이 행사장을 방문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려동물 시장을 확대해야 수의계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 현재 어린 강아지가 줄어들고 있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아니냐”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대상 행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수의사 세미나가 너무 늘어나 보호자 대상 행사를 할 시간과 인력 여유가 없다. 게다가 일부 수의사 학술대회 부스 참가비용이 너무 비싸졌다. 수의사 학술대회 한 번 참가하는 비용이면 소비자 대상 행사를 여러 번 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현재 일부 컨퍼런스 메인 협찬 비용은 수천만 원에 이른다.

이어 “수의사분들이 ‘제품의 인지도’를 높여달라고 요구하는데, 업체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수의사 행사가 너무 많아서 그럴 수가 없는 실정이다. 관계 때문에 수의사 행사에 불참하는 것도 참 어렵다. 과연 수의계 전체 발전을 위해 어떤 것이 맞는 일인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더 이상 회장 임기 기간 중 얼마의 돈을 모았는지를 기준으로 협회장의 성과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 속에 업체들이 움직였다. 반려동물 수의 관련 업체 10곳은 최근 간담회를 개최하고 각 수의사협회에 보낼 건의문을 완성했다. 건의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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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들과 수의사협회 간의 간담회를 통해 올바른 방향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현재 내년 1월 수의사 학술단체-업체간 간담회 개최가 준비 중이다.

흥행실패 학술대회 늘어나며 단체 간 빈익빈부익부 현상 발생

강사진 겹치고 주말에 쉬지 못하는 수의사도 점차 늘어나

늘어나는 학회·세미나·연구회는 비단 업체에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다. 수의사 단체에도 부담을 준다.

10월 24~25일 한국임상수의학회 추계학술대회가 개최됐다. 24일에는 대학원생들의 발표가 이어졌고, 25일은 수의사 대상 학술대회가 열렸다. 수의사 대상 학술대회 프로그램은 양질의 강의로 꾸려졌다. 김정현, 황철용, 최을수, 장동우, 정진영, 강병택, 강지훈, 박성준, 윤헌영, 정성목, 정동인, 김준영, 최지혜, 오태호 등 각 수의과대학 임상 교수들과 송치윤, 한만길, 이진수 등 로컬 임상가들이 강사로 나섰다. 하지만 학회에 참가한 수의사는 많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수의과대학 교수들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다보니 교수 강의는 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학회·세미나·연구회가 늘어나면서 강사진이 겹치게 되고, 교수들의 강의를 쉽게 접하다보니 학술대회에 대한 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지부수의사회를 떠나 분회수의사회까지 교수들을 초청해 강의한다. 임상가 입장에서는 자기 동네에서 평일 저녁에 교수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 굳이 주말에 학술대회까지 참가할 이유가 없어진다. 또한, 웨비나(웹 세미나)가 발달하면서 오프라인 학술대회의 매력요소는 더 감소했다.

9월 12~13일에 개최된 제12회 서울수의임상컨퍼런스는 사전등록자가 1660명을 넘어설 정도의 역대 최대 규모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임상수의사들 사이에서 “어차피 연수교육 시간은 채워야 하니까, 서수컨퍼런스는 기본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서수컨퍼런스를 비롯한 일부 학술대회를 제외하면, 나머지 학술대회는 점차 참가자가 줄어들고 있다. 학술대회 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내과교수협의회는 10월 24일 한국임상수의학회 정기총회 이후 회의를 가졌다. 수의내과전문의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를 위해 모였지만 이 자리에서 늘어나는 학술대회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한 수의과대학 교수는 “현재 반려동물 임상과 관련된 학회와 세미나가 너무 많아졌다. 학술대회의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업체들도 힘들어한다. 내과만 보면 미국의 경우 ACVIM(미국수의내과학회)가 굳건히 있고, 그 안에 심장, 피부, 신장, 영양 등 각 분과들이 움직인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내과학회가 굳건히 서있지 않은 상태에서 각 분과들만 점점 커지고 있는 형태”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교수들도 외부 강의를 줄여야 한다. 내과 학회에서 강의해야 수의사들이 모이고 학회에 힘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수의과대학 교수는 “수많은 연구회가 생기고 있지만, 과연 세미나 장사가 아닌 진정으로 연구하는 단체가 몇 개나 되는 지 궁금하다. 임상수의학회 빼고 실질적인 학회지를 발간하는 임상 학술단체가 사실상 없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국내 수의계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술지를 발간하는 곳은 기초와 임상을 모두 포함하여 사실상 대한수의학회와 한국임상수의학회 두 곳 뿐이다.

강사진은 한정적인데 학회·세미나·연구회가 늘어나다 보니 한 강사가 하루에 두 곳에서 강의하는 일도 있다. 오전에 한 곳에서 강의를 하고 오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강의를 했던 한 강사가 오후 강의에 늦는 일도 발생했다.

일부 개인 수의사들도 힘들어지고 있다.

임상수의사 D씨는 현재 6개 수의사단체 및 학술단체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거기에 지역수의사회 일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주말이 없다. D씨는 “특정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 가입한 곳도 있지만, 일부 단체는 관계 때문에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학술단체를 만드는 교수님과 동료 수의사들의 ‘D원장이 좀 도와줘야지’하는 요구 때문에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학회·세미나·연구회는 만들어야 하는 데 일할 사람이 없어 다른 학회 이사로 활동 중인 사람이 또 다른 연구회 이사로 활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학회와 연구회는 ‘학술’을 위해 만들어져야지, 알력다툼 때문에 만들어져서는 안 돼”

한 지부수의사회 관계자는 늘어나는 단체를 보며 “학술연구를 위해 만들어져야지, 지금처럼 알력다툼 때문에 단체가 늘어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같은 목적을 가진 학회도 교수들 파워에 따라 생기고 운영된다. 사이가 안 좋은 교수들이 별도로 단체를 만드는 일이 많다. 백 번 양보하여 알력다툼 때문에 단체를 만들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학회를 만들었으면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해야지, 왜 만들어놓고 업체들의 후원을 받는지 모르겠다. 현재 업체 후원이 없으면 운영이 불가능한 단체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학술대회가 하도 많다보니, 서로 먼저 날짜를 잡으려고 한다. 날짜가 겹치는 바람에 다른 학술단체에 연락해 날짜를 바꿔달라는 요구도 많고, 이 때문에 갈등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실제 같은 날 학술행사를 개최한 두 단체 대표가 행사 날짜를 놓고 언성을 높이며 싸운 일도 있었으며, 업체 행사를 다른 날짜로 옮기라고 압박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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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세미나·연구회가 너무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다.

업체도 힘들고 학술단체도 운영이 어려워지고, 여러 단체 임원으로 활동하는 수의사들도 힘들어한다. 각 단체들이 모여 함께 학술대회를 개최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다.

손은필 서울시수의사회장과 허주형 한국동물병원협회장 모두 “학회·세미나·연구회가 너무 많고, 같이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에 동의했다.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여러 단체가 모여 함께 학술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학술대회 수익금 배분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다. ‘우리 단체에서 참가한 수의사가 더 많다’, ‘우리 단체 힘으로 모아온 업체 후원이 몇 개인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 등 각 단체마다 주장이 엇갈렸다.

반려동물 산업계의 마당발로 소문난 한 관계자는 “우리는 수의사를 슈퍼 갑이라고 부른다”며 “우리 같은 업체는 수의사들의 입김에 의해서 이미지가 좌지우지되고, 수의사들과의 관계를 좋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학술단체가 훨씬 많이 늘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업체가 수의사를 갑으로 생각하는 구조가 과연 수의계 전체 발전에 도움이 될는지 고민해볼 필요는 없을까? 각 단체 간의 소통과 화합, 그리고 약간의 ‘희생과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기사 : 수의사와 업체,갑·을 관계 아닌 상생관계 구축 필요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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