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19대 국회의원 중 수의사 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갈 수록 수의학 및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이 펼쳐져야 하고, 수의사를 포함한 동물과 관련된 단체·직군, 동물을 사랑하는 국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가도 필요합니다.
반려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 산업동물 등 동물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동물권, 동물복지, 관련산업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4월에 있을 제20대 총선에서 반드시 수의학과 동물권을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나와야 합니다.
20대 총선을 80여일 앞두고 수의사 출신으로 15대,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우재 전 의원을 만나 수의사의 정치참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인터뷰는 1929년 윤봉길 의사가 조직한 ‘월진회’ 서울 사무실에서 진행됐습니다. 이우재 전 의원은 현재 (사)매헌윤봉길월진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Q. 어떻게 수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됐나?
예산 농고라는 농업으로 유명한 고등학교를 나왔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1952~3년도에 가장 이상적인 나라는 낙농과 축산이 발달된 덴마크였다. 덴마크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언젠가 축산이 발달할 것으로 보고, 축산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축산과 보다는 수의학과를 가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면 농촌운동을 해야겠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수의사가 되면 농촌운동을 이끌기에 더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었다.
Q. 수의대 학창시절은 어땠나?
학창시절에는 공부보다 농촌운동, 학생운동을 많이 했다. 당시 사회운동은 노동운동보다는 농촌계몽운동 쪽이었다. 농민이 못 배우고 기술이 없어서 못산다고 하는데 그것이 원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즉, 정책과 국가·정치 구조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을 알려주는 농민 의식화 운동을 주로 했다.
또한, 수의대 가서 농촌운동을 하면서 경제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졸업 후 건국대 경제학 대학원을 진학했다. 그 뒤 학교를 졸업하고도 1964년 ‘(사)농업근대화 연구소’ 설립하고 연구소에서 농촌연구 활동, 강좌, 농민운동을 꾸준히 했다. 당시 금요강좌를 수백 회 진행했는데, 농업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강의를 진행하여 농민 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인사가 강좌를 수강했다.
Q. 수의사로도 활동한 적이 있나?
수의사로도 활동했다. 서울시 수의직 공무원 됐었는데,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했었다는 이유로 발령을 잘 안내주더라. 그러다가 마장동 도축검사소로 발령을 받아 6개월간 일했다. 그래서 소 임신진단과 도축검사도 곧잘 한다. 또 대학원시절 동물병원에서도 한 2년간 일했다. 동물병원에서 일할 때 셰퍼드에게 IV 주사를 놓다가, 셰퍼드조차 사람에게 길들어져서 가만히 저항 없이 주사 맞는 것을 보며 학생운동 하다가 잡혀서 고문 받던 시절을 떠올린 적도 있었다.
Q.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수의과대학 들어갈 때부터 농촌운동을 하려고 들어갔다. 돈이 없어서 수의대도 2년 늦게 들어갔고, 또 등록금이 없어서 한 학기 휴학도 했었다. 여튼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농촌운동을 했다. 그러고 보면 수의사가 된 것도 기적이다(웃음).
학생운동을 하면서 서울대 학생운동 서클 친구들과 친해졌고 같이 활동했다.
정치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대학생 때부터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보면 된다. 수의대 학생회장일 때 민족통일연맹 활동으로 잡혀 들어갔었던 적도 있다.
연구소를 운영하면서도 운동을 계속했다. 대학 강의도 7년 정도했는데, 그러면서도 의식화 교육을 꾸준히 진행했다.
그러다가 유명한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이 발생해서 또 잡혀 들어갔었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의식 있는 사람을 많이 배출하니까, 크리스천 아카데미 탄압했고 나도 5년형 선고받고 3년 조금 넘게 살고 나왔다.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편집자 주) : 1979년 3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당시 크리스천 아카데미 간사였던 한명숙 전 총리와 이우재 전 의원이 구속된 사건.
나와서도 민주화운동에 관여했다. 나는 평소에 ‘민주화가 되려면 계몽된 농민이나 노동자가 세력화, 조직화되어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래서 늘 조직화를 통해 대중조직을 튼튼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다가 직접 정당을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하여, 1990년 11월 민중당을 창당하고 초대 상임대표를 맡았다. 내가 상임대표를 맡고, 이재오 국회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등이 지도부로 함께했다.
Q. 국회의원 출마는 어떻게 하게 됐나?
당시 4개 정당이 있었다. 노태우의 민정당, 김종필의 자민당, 김대중의 평민당, 그리고 민중당까지. 우리 민중당은 스웨덴의 사민주의를 내걸었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51명의 민중당 후보가 출마하였으나,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고 정당법에 의거해 당이 해산됐다. 나도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말았다. 이 때 나를 비롯해서 김문수, 정태윤 등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자유당으로 합류했다. 이후 15대 총선에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금천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보궐선거를 통해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5대 초선 의원이던 시절 한나라당 부총재를 지냈으며, 14대 국회의원이었던 이길재 전 의원의 뒤를 이어 대한수의사회장도 함께 역임했다. 2005년에는 제30대 한국마사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신한국당 안에서 정치개혁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3개 당이 섞여있다 보니 쉽지 않더라. 지역구도와 소선거구제를 깨자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결국 지역주의에 기생해서 정치를 해야하나 하는 생각에 탈당하기로 결정하고, 이부영,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의원과 함께 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민주당 내에서 신당 창당을 준비하던 분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당시 이우재, 김부겸, 이부영, 김영춘, 안영근 등 5명을 사람들이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렀다. 이후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경선에서 탈락한 후 은퇴했다.
Q. 전직 국회의원으로서 정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게 정치다. 사회라는 것은 이해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곳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을 정책적으로 조율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자본가도 대변해야 하지만 노동자, 서민도 대변해야 한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을 대변하려면 정당도 많아야 하기 때문에 다당제가 맞다고 생각한다. 하나만 있으면 제왕이 되고 나머지는 없어지는 형태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Q. 20대 총선에 출마하는 수의사들이 있다. 선배 정치인으로서 조언을 한다면?
우선 정치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명분이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효율적인 것이 정책으로 채택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을 만들고 펴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권력욕심이 있어서, 돈 벌었으니까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출세하고 싶어서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평상시에 지역사회를 위해서 열심히 살고, 주민들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
두 번째로, 정치라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자기 이익과 편안함을 생각하면 할 수 없다.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선거는 표를 얻어야하기 때문에 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치라는 게 유권자가 그 사람의 살아온 길, 공약을 보고 찍어야 되는데, 악수하면 찍고, 악수안하고 나와 모르면 안 찍는다. 괜히 시비 거는 시민들도 많다. 그걸 다 참고 대중적으로 어울려야 대중정치를 할 수 있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혼신의 힘을 다하길 바란다.
Q. 수의사 출신 정치인의 의미가 있을까?
후배 수의사들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 그럼 분명 수의계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수의학이 갖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개인적으로 문명사적인 비중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애완동물이 아니다. 반려동물이 됐다. 우리 아내도 강아지 없으면 외로워한다. IT가 발달할수록 사람은 더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이런 시대에 인간의 정서와 반려동물은 크게 연관되어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수의학은 축산·농업·환경 등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런 의식과 수의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수의사로서 이러한 철학적이고, 정책적인 비전을 가지고 나서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길 바란다.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설령 낙선하더라도 그 도전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재 많은 정치가들을 배출하는 학과들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정치가를 생각하고 그 과에 진학한 사람도 많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시작부터 권력지향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의사들은 수의대에 진학하는 이유가 전혀 권력지향적이지 않다. 충분히 권력지향적인 과를 선택 할 수 있는 실력이 있음에도 순수성을 가지고 동물이 좋아서 수의대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 자부심과 비전을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의사 뿐 아니라 정치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게 진짜 의미 있는 일이다.
Q. 마지막으로 정치에 관심 있는 젊은 수의사들과 수의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역사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적당히 간판가지고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오산이다. 간판으로 정치하려면 수의사 간판은 부족하다. 반대로 얘기하면 수의사가 정치를 하려면 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지역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여 사회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지역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이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치가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본다. 열심히 노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