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기관 : Small Animal Teaching Hospital, Faculty of Veterinary Science, Chulalongkorn University
실습일정 : 2016.01.11.~2016.02.05., 4주
[上]편(바로가기)에서 이어집니다..
1/19 General and Preventive Medicine Unit
Dr.캅은 차트를 작성하면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여기 왜 왔니? 이번 실습을 통해서 니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니? 니가 원하는 것을 알려주면 내가 너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 것 같아”
“I don’t know.”
한 방 제대로 얻어 맞았다. ‘나는 여기 왜 왔지? 놀러왔나? 이력서에 쓸 스펙 한 줄 사러왔나?’
복부 팽만 시베리안 허스키가 왔다. Dr.캅이 나에게 물었다. “복수나 폐부종은 어떻게 생기니?”
힘겹게 ‘Oncotic pressure’를 말한다.
“Oncotic pressure가 낮을 때 생기니? 높을 때 생기니? Hydrostatic pressure의 경우는 어떠니?”
“Uhm.Uhm..Uhm……”
“잠시 다녀 올 테니,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너의 의견을 말해줘”
“이거는 높고 이거는 정상범위이고 이거는 낮고……”
환자의 상태는 전혀 유추하지 못하고 참고범위보다 낮다 높다만 대답하면서 부끄러워진다. 목소리가 작아진다. 나 스스로가 작아진다. 작아진다.
출라롱콘 학생들은 영어를 잘한다. 그리고 수의학 지식도 깊다. 수의사 선생님들의 진단과정을 영어로 친절하게 통역해주는데 병명, 약리, 병리 지식이 영어로 조리 있고 간결하게 툭툭 나온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호자로부터 병력을 청취하고 신체검사하고 IV카테터 삽입하고 수액용량 계산하고 좌우심잡음 구분해서 등급 나누고 실험실 검사도 잘하고 결과 분석도 잘한다. 내 자신이 초라해진다.
나도 태국 수의사분들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항상 대화에 안개가 끼어있다. 그런 상황에서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항상 행동을 조심하고 애를 써서 웃는 표정을 짓는다. ‘Sorry I don’t know. Sorry I don’t understand’.
방금 환자가 고양이었는지 시베리안 허스키였는지도 기억 못 한 체, 헤~ 웃으며 ‘I don’t know’를 하는 외국학생이 얼마나 등신 같을까. 종일 서있으니 다리가 아프다.
실습을 마치고 저녁을 사서 국립 경기장 벤치에 앉아 먹는 데 잘못 샀다. 너무 강렬하다. 집 생각이 울컥 난다. 6시, 스피커에서 모르는 노래가 나온다. 조깅하던 사람, 담배피던 사람, 족구하던 사람들 모두 멈추고 일어선다. 나도 괜히 꼬은 다리 풀고 숟가락을 멈춘 채 영문을 몰라 두리번 거린다.
숙소에 콕 처박혀 맥주를 들입다 마시고 싶다. 겨우 참고 무에타이 체육관으로 간다. 아~~아~~~아~~~~~샌드백을 두드려 패니 좀 낫다.
무에타이 코치가 나를 때려주는 건 좋은 일이다. 코치가 나를 한 수 아래로 보는 게 아니라 선수와 선수의 승부로 임한다는 뜻이니까. 얻어터지고 오면 회비값을 하고 온 거라 생각한다. 나는 태국에 왜 왔나. 얻어 터지러 왔나 보다.
1/21 Acupuncture Clinic
한의사가 되려 독서실에서 여러 계절을 보내고 수의대에 온 내가 개, 고양이들이 침을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출라롱콘 수의과대학 동물병원 Veterinary Acupuncturist가 마침, 서울대학교에 2달간 Exchange Program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 매우 친절히 대해주었다. 그는 미국의 수의침술기관에서 교육받은 후 certificate을 획득했다고 한다. 음양오행설을 태국 수의사선생님께 영어로 듣고 있으니 묘하다.
대부분의 환자는 IVDD, 신경계 질환이다. 개, 고양이들이 의외로 꽂힌 침을 잘 견딘다
“한국에는 의사와 한의사의 오래된 논쟁이 있다. 의사들은 환자들이 침치료와 허브치료만 기다리다 적절한 치료기회를 잃는다고 한의사를 비난한다. 당신의 의견은?”
“우리는 환자에게 침치료를 첫째로 제시하지 않는다. 출라롱콘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에 온 환자는 수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X-ray검사 등을 통해 수술가능 여부를 확인하며 환자는 Neurologist와 상담을 한다. 또한 acupucturist, neurologist, surgeon이 계속 의논한다. 나는 단지 acupuncturist이지 않다. 나 또한 수의사이다”
출라롱콘대학 동물병원 Neurologist 선생님께 물어 보았다.
“Neurologist로서 침치료에 대한 의견은?”
“감염성 질환과 종양이 아닐 때 침치료를 추천한다. 환자마다 반응이 달라 환자에게 반응이 있을 것이라 확실히 말하지는 못한다. 개인적으로 개보다 고양이가 반응이 더 나타나는 것 같다. 침치료에 대한 반응은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1주 1회 치료 기준으로 한 달에서 두 달 정도에 반응이 나타나는 것 같다”
침치료에 대한 원리는 면역계자극, 신경계자극으로 설명해주셨다.
한방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무지해서 용감한 나의 결론은 간단하다. 무엇이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침은 수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 중에 하나이며, 환자의 상태를 유의미하게 개선시킬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덩샤오핑이 말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1/25 Division of Obstetrics, Gynaecology and Reproduction
임신진단, 분만, 자궁축농증, 유선종양 환자들이 많았다. 초음파 임신진단이 하루에 5 case나 있었다.
현재 태국 수의계의 큰 문제는 피임약(contraceptive drug)의 무분별한 투여라고 한다. 중성화 수술비용이 부담스러운 보호자들이 Illegal Doctor를 통해 개, 고양이에게 피임약을 주사해, 내분비 이상으로 자궁축농증, 유선종양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피임을 위해 수컷의 음낭을 끈으로 묶어서 괴사와 패혈증으로 이어지다 내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현재 태국 수의사들은 지속적인 홍보와 보호자 교육으로 불법 피임약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외과가 따로 있지만 중성화, 자궁축농증, 유선종양, 제왕절개 등의 수술은 산과에서 담당했다. 학부생들이 수술 전 신체검사, 마취제 용량계산 및 투여, 기도삽관, 수술실 보조, 마취회복, 환자 인계, 보호자 상담을 담당하는 것이 마냥 부러웠다.
건강한 고양이의 경우 OHE를 횡와자세에서 옆구리를 절개해 접근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수컷 중성화의 경우 음낭을 절개하지 않고 정소를 음낭에서 음경 쪽으로 밀어서 음경 옆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태국 수의대 5,6학년들은 강의실에서 가지 않고 병원에서 실습만 한다. 가끔 소규모로 Case, 약리, 수술법등에 대한 강의와 토론이 있다. Day1 skill 항목에 따른 학부생의 교육은 Clinician이 담당한다. 저자주)
2/1 Division of Surgery
외과는 출라롱콘대학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에서 가장 인원이 많았다. 교통사고, 길거리 개들에 의한 교상 등 외상환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골절 케이스만 하루 평균 5건 정도 된다고 했다.
외과는 구강외과, 정형외과, 일반외과, 재활의학과 등으로 나누어진다. 수술은 대학원생과 Clinician들이 집도하고 Assistant는 학부생들이 맡는다. 교수님들은 같은 시간에 수술이 이루어 지고 있는 이 방 저 방을 다니면서 짧게 조언을 해주신다.
아침 7시 40분 외과 교수님, 대학원생, Clinician, 학부생들이 모여서 회의를 진행한다. 대학원생과 Clinician들은 테이블에 앉아 샌드위치와 도시락을 먹고 학부생들은 일어서서 오늘 수술에 assistant로 참여할 환자에 대해 브리핑한다.
학부생의 브리핑 중간 중간에 계속 질문이 쏟아 진다. ‘진단이 이루어진 과정은?’, ‘혈액검사결과는?’, ‘세균 배양 결과는?’, ‘수술 부위를 지나는 신경은?’
집도를 제외한 수술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학부생이 담당한다. 수술전 신체검사, 마취제 용량계산 및 투여, 수술실 보조, 마취회복, 환자인계, 보호자 상담, 마지막으로 수술절차를 복기한 보고서 제출까지.
학부생이 수술실에서 종종 실수를 했지만 큰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대학원생, Clinician들의 섬세하고 야무진 손길 너머 농담과 여유가 가득했고 어떤 수술실은 클래식이 흐르기도 했다.
슬개골 내측 탈구수술은 정형외과 대학원생 두 분이 전 과정을 집도 했는데 수술 과정 한 단한 단계를 왜 하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좋은 영어로 조리있게 설명해주셔서 존경스러웠고 감사했다. 대퇴골 활차연골을 다듬을 때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이제야 교수님의 손놀림을 볼 수 있겠구나 기대했는데 몇 마디 하고 나가버리셔서 아쉬웠다.
2/3 Diagnostic Imaging Unit
방사선 촬영은 테크니션의 주도로 학부생과 보호자가 환자를 보정해서 이루어진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밀려드는 X-ray 영상 파일을 보고 인턴 선생님이 진단서를 1차로 작성한다. Clinician이 이를 바탕으로 인턴선생님과 토론 후에 최종진단서를 작성한다.
Clinician들은 단계적으로 각각 방사선, 초음파, CT를 담당하고 있었다. MRI는 없다. CT는 하루에 2 case정도 촬영이 있었다.
선임 Clinician인 Dr.반에 의하면 CT를 도입한지는 몇 년 되지 않았고 CT를 배우기 위해 Distance course와 짧은 해외 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쾌활한 Dr.반은 유창한 영어와 섬세한 해부학 용어로 종양, 척추골절, 이물 환자 등을 깊이 있게 설명해주었다.
CT는 다양한 각도에서 X-ray를 조사해서 이를 컴퓨터로 재구성하여 3D로 표현한다. 나는 흐릿한 2D의 X-ray가 아니라, 만져질 듯한 3D의 CT가 되고 싶다. 점쟁이는 8글자 사주로 앞 날을 말한다. 나는 8글자 대신, 분과(分科)학문의 지식을 환자에게 조사(照射)해서 재구성하여 환자를 속속들이 알고 싶다. 하지만 길은 아득하고 게으름이 교과서 보다 더 두껍다.
2/5 귀국
Pum Napasorn은 출라롱콘 수의과대학 5학년 학생으로 Assistant Exchange Officer of IVSA Thailand를 맡고 있다. 2015년 5월에 지원해서 2016년 1월 태국에 오기까지 그리고 실습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서류, 일정, 숙소 등을 출라롱콘 대학과 나 사이에서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메일을 주고 받을 때도, 태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그녀의 태도는 딱딱하고 짐짓 엄격하기까지 해서 매번 나의 태도와 영어 뉘앙스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나 반성해야 했다.
귀국하는 날 커피를 함께 마시며 그녀가 나에게 엄격했던 이유를 듣게 되었다. 한국학생들이 여럿 다녀 갔는데 한국학생들은 임상 실습보다 병원 밖의 여행과 활동을 즐기는 것에 관심이 많아 실망스러웠단다. 또 내가 오기 직전 지난 여름에 왔던 한국학생은 도중에 말없이 귀국해버려 연락이 닿지 않는 동안 그 학생의 생사를 걱정했었다고 한다.
내가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출라롱콘에 지원하지 않았을 거라 했더니 웃으며, 한국 측에 알려 굳이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이번 실습을 통해 많이 배웠고 또, 강력한 동기부여를 얻었기 때문에 친구들, 후배들에게 출라롱콘을 적극 추천할테니 지원자가 준비할 점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답변을 정리, 요약해 본다.
첫째, 태국에 오는 목적이 임상실습이어야 한다. 배우려는 열망도, 호기심도, 질문도 없이 멍하니 병원 마칠 시간만 기다렸다 놀러 다닐 학생은 사절한다.
둘째는 영어실력. 토플, 토익 등 공인성적은 필요 없다. 하지만 병원의 Clinician, 학생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나는 수능 영어 공부 이외에 따로 어학연수를 떠났던 경험은 없다. 수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라면 영어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병원에서 Clinician과 의사소통은 영어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가 유창해도 NSAID, Pyometra, IMHA, BPH, MCV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의사소통이 힘들 것이다.
영어보다 수의학 지식과 적극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과 공부를 할 때 병명, 병리용어, 의학용어를 영어로 익혀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임상과목을 배운 5,6학년이 왔으면 좋겠다. 저학년 학생들은 임상 지식이 부족해 Clinician들이 난처해 했고 당사자도 적응을 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태국에서 만난 수의사들과 학생들은 내게 ‘똑똑한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Dr.캅의 날카로운 질문과 정돈된 브리핑은 수의사로서 임상지식을 체계적이고 명료하게 갖추어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6학년 학생들의 임상실력은 기출문제만 따라간 나의 공부 아닌 공부를 돌아보게 했다.
또한 병원 안팎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어리버리 한국 학생을 자상하고 친절하게 기다려주고 배려해주어서 너무도 감사했다.
태국 수의료 시스템과 시설이 부러워 멍해질 때 가 많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부러운 것은, 교복 입은 풋내기 수의사들을 말없이 기다려주는 보호자들이었다.
학생들이 주사기를 두 번, 세 번 잘 못 찌르고, 채혈하며 개를 피투성이로 만들어도 보호자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는커녕 웃으면서 개를 어르고 달래었다. Clinician들이 진료하다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30분 넘게 해도, 보호자들은 말없이 공손하게 기다려주었다.
폭설로 공항이 마비 될 정도로 추웠던 겨울, 가끔은 울컥 힘들고 외로웠지만 두고두고 그리워할 꿈같은 시간을 보냈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동기들, 후배들도 준비하고 도전해서 좋은 경험하고 많이 배워오면 좋겠다.
하지만 유념해야 한다. 멀리 실습 간 당신이 행동을 잘못하면 뒤에 올 한국학생들, 후배들 기회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