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전문의제도, 어떻게 도입돼야 하나
수의정책포럼, 전문의제도 국내외 현황 공유..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 도입사례 소개
제89차 수의정책포럼이 국내 수의전문의 제도 도입을 주제로 13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AiVO)제도 도입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서강문 서울대 교수가 연자로 나서 국내 전문의제도 도입 필요성과 미국∙유럽의 전문의제도 현황,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 제도 설립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아직 대형병원∙대학원에 전문의 역할 기대..국내 전문의제도화 물밑 움직임
현대사회는 수의사에게 더 깊은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보호자들은 사람 못지 않은 의료서비스를 원한다. 한 명의 임상수의사가 여러 진료과목의 급속한 발전을 모두 제대로 쫓기란 불가능하다.
때문에 진료과목이 더 세분화되고 각 과목별로 전문의제도가 도입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내가 OO과 진료를 잘 본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보다 ‘OO과 전문의’ 자격을 제시하는 편이 더 믿음직하다. 이러한 체계는 수의사 전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도 직결된다.
일선 병원에서 관리하기 힘든 심각한 질환을 가진 동물은 아직 대형동물병원이나 임상대학원 출신 학위자에게 기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형병원에서 일하거나 임상대학원 출신인 점이 그 수의사의 임상역량을 직접적으로 보장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전문의 수준의 임상역량이 없어도 돈이 많으면 병원을 크게 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임상대학원 석사나 박사학위는 연구를 잘해서 훌륭한 논문을 쓴 결과로 얻는 것이다.
때문에 국내에서도 전문의제도를 도입하려는 물밑 움직임이 서서히 일렁이고 있다.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 아시아수의피부과전문의는 한국 수의사들이 도입과정부터 참여하고 있다.
수의영상의학연구회가 조만간 도입할 ‘임상역량 평가인증제’는 ‘학위와 임상역량은 별개’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평가인증제는 향후 전문의제도 도입과도 연계될 전망이다.
수의병리학, 실험동물의학계 등에서는 이미 자체적으로 전문수의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유럽 전문의 1만5천여명 활동..전문성 보장할 자체 평가인증제도 갖춰
이날 서강문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수의전문의 현황과 제도적 특징을 소개했다.
서 교수에 따르면, 1950년대 수의병리학과 수의공중보건학에서 시작된 미국수의전문의는 현재 총 22개분야에서 확립됐다. 현재까지 11,000여명의 전문의를 배출했다.
유럽의 수의전문의제도는 1990년대 임상분야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총 25개 전문분야에서 4,300여명의 전문의가 활동 중이다.
양측 모두 각 전문의제도의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한 통솔기구를 가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수의전문의위원회(ABVS)와 유럽수의전문의위원회(EBVS)가 각각 1959년과 1993년 결성된 것.
이들 위원회는 각 전문의학회 대표자들로 구성된다. 각 전문의학회를 모니터링하면서 제도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각 학회가 정기적으로 자체평가보고서를 제출하고 위원회가 이를 인증해주는 체계도 갖췄다.
전문의제도는 각 분야별로 자생적으로 설립되지만, 일단 설립된 후에는 기구가 각각을 평가하고 인증해주는 방식이다.
이는 전문의를 배출해내는 교육, 평가과정을 끊임없이 검토 개선하기 위함이다. 전문의제도의 존립이 전문성 유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시아는 2010년에 들어서야 전문의제도가 서서히 도입되고 있다. 아직까지 피부학, 안과학, 내과학, 종보존(야생동물) 등 4개 분야에 국한되어 있다. 인증기구인 아시아수의전문의위원회(AiBVS)가 결성된 것도 지난해에 이르러서다.
전문의제도 도입, 신뢰보장할 객관적 기준+기존 전문가 인정 필요
이날 서강문 교수는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 설립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전문의제도 도입 시 갖춰야 할 요건을 제시했다. 서 교수는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제도의 설립 전문의(Founder diplomate)로서 설립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이날 발표된 설립과정으로 비추어본 전문의제도의 도입조건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외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감과 동시에, 해당 분야에서 기존에 전문성을 인정 받던 수의사를 품어야 한다.
전자를 위해 미국, 유럽수준으로 임상경험과 연구실적을 검증하는 객관적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후자를 위해서는 디팩토(De Facto, ‘사실상의’) 전문의를 뽑고, 한시적으로 교육과정 이수 없이도 레지던트시험을 볼 수 있도록 허용한다.
전문의는 전문의가 양성하는 것이 원칙. 하지만 아직 전문의가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안과전문의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2011년 유럽 전문의 2명과 미국 전문의 2명을 초청했다. 이들이 포함된 위원회에서 5명의 아시아수의안과 설립 전문의를 선정했다. 이들 설립 전문의들이 다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21명의 디팩토 전문의를 선정했다.
전문의 선정기준 및 평가체계는 유럽수의안과전문의 제도를 대체로 적용했다.
설립 전문의에게는 8년 이상의 수의안과 경력과 60% 이상의 진료케이스가 안과일 것이 요구됐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최근 3년간의 진료기록(Case log) 전체를 제출해야 하며, 4건 이상의 논문게재 경험과 국제학회 발표 경험도 필요했다. 안과진료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보유하는 것도 필수조건.
서강문 교수는 “아직 전문의교육과정이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간의 진료 및 연구경험을 서류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디팩토 전문의 선정을 마친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는 2016년부터 전문의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레지던트 교육과정 이수생이 배출되기 전인 2020년까지는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아도 시험을 볼 수 있다. 시험은 이론 및 실기로 구성되며, 슬라이드 진단이나 수술 등을 평가할 방침이다.
결국 2011년 설립 전문의 선정부터 2021년 이후 정식 전문의 배출까지 최소 10년의 과정이 소요되는 것이다.
이날 포럼에 참여한 수의계 원로들은 전문의 제도화의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했다.
그러면서 국내 임상관련 학회의 분열상이나 일선 동물병원의 임상역량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한 위원은 “전문의제도 도입의 토대가 될 학회부터 분열하고 있다”며 “임상 교수에 따라, 그 교수의 지도학생에 따라 따로 뭉치는 상황에서 전문의제도 도입에 공감대를 이루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위원은 “전문의제도가 도입된다면, 해당 진료분과의 표준을 제시하고 교육함으로써 일선 동물병원의 임상역량도 함께 오를 것”이라며 “수술결정시점, 수술법, 진단법 등의 표준화되어야 보호자가 동물병원을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