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⑦] 김영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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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출판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 받는 책입니다.

많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당시 책에서 소개된 22명 수의사분들을 다시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일곱 번째 주인공은 김영준 수의사입니다.

수말수 집필 당시 야생동물임상 분야에서 참여했던 김영준 수의사는 현재 국립생태원 동물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활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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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Q. ‘수말수’를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집필 10년의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다.

1995년 전남대 수의대를 졸업한 후 한일산업 대관령목장을 거쳐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으로 방글라데시에서 2년간 활동했다. 1999년 귀국한 후 진로를 고민한 끝에 야생동물의학 분야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전남 순천 온누리동물병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를 거쳐 현재는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중간 중간 미국 오마하 동물원, 미네소타대학의 The Raptor Center, 국재두루미재단 두루미의학 연수 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수말수 집필의뢰를 받았던 2004년에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어서 고사도 했었지만, 야생동물의학이라는 새 영역을 소개하고자 참여했다. 수의사 22명이 각기 다른 현장을 풀어내는 작업에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당시와 비교해보면 야생동물의학 현장 환경도 많이 변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제 스스로가 얼마나 변했는지도 살펴보게 된다.

 

Q. 국립생태원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나? 다른 지역 야생동물구조센터와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국립생태원은 생태계 건강성 회복을 위한 생태 조사·연구, 생태계 복원 및 기술개발을 주 목적으로 2013년 설립됐다.

서천에 위치한 국립생태원은 한반도 생태계는 물론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와 그 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한눈에 관찰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연구∙전시∙교육의 공간이다. 국내외 생태연구를 선도하고, 국민의 올바른 환경보전의식을 함양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동물병원의 기본 업무는 생태원 내 동물들의 건강을 돌보고, 검역과 방역으로 외부 질병 유입을 차단하는 일이다. 이에 더해 야생동물 건강과 관련된 연구 업무를 일부 진행하고 있다.

국립생태원의 동물전시는 큰 틀에서 동물원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식지에서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동물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동물이 원래 서식하는 식생과 환경을 더불어 전시함으로써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또한 외부 야생동물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야생동물구조센터와 차이를 보인다.

다만 응급상황 발생에 대비해 환경부 지정 야생동물구조센터와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치료소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Q. 10년이 지난 지금도 야생동물의학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 그만한 사명감이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진로를 선택할 때 ‘평생을 경주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영역 내에서 말이다.

야생동물 분야는 공공성이 매우 강조되면서도 사적인 감정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야생동물이 속한 환경 영역은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 야생동물은 사회적 가치로 볼 때 지극히 소수자다. 하지만 인류의 활동범주가 넓어지고 환경 변화가 극대화 되면서 야생동물이 지닌 질병이 인간 사회에 유입되고 있다.

이를 이해하고 예방하고 조절하는 업무까지도 야생동물의학의 큰 틀이라 볼 수 있다. 수의사가 가진 전문지식을 활용하면서 개인의 성취뿐만 아니라 인류와 지구의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Q. 10년 동안 좋아진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우는 야생동물 지식이 제한적이다 보니 그 갈증으로 찾아오는 후배들이 많았다. 그렇게 학생으로 만났던 친구들이 이젠 동료수의사가 되어 같이 고민하고, 고충을 나누고, 서로 상의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동료’가 없던 시대를 지내본 사람들은 제 느낌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안타까웠던 점은 일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들조차 기회의 한계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보단 야생동물 수의사의 여건이 좋아진 편이다.

전국에 야생동물구조센터로만 12개소가 설치됐고 각각 1~2명의 수의사가 일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국립환경과학원에서도 야생동물 질병 관련 수의사들의 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2018년에 국립야생동물보건연구원이 설립되면 이 같은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Q. 수말수에서 “단순 의료 시술자가 아닌 생태계를 이해하는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고 하셨는데, 그간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사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경험과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야생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식물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데, 식물 공부는 쉽지도 않고 좀처럼 호기심이 생기지도 않더라.

동물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그 동안 ‘아마 이렇겠지’라고 추측했던 수 많은 건방짐들이 깨져나간다. 사람의 눈높이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동물들이 해내는 것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동물을 이해하려면 수많은 논문을 살펴 보고, 현장에 나가 그들의 삶터에서 숨쉬어 보고, 통계프로그램에 기반해 동물의 이동이나 서식지 요구를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간척사업으로 끝없이 펼쳐진 조개들의 죽음 앞에서, 이곳을 찾아 온 도요새의 당황스러움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멧돼지들이 쉬고 간 쉼터에 앉아 산 아래를 굽어보며 시원한 산들바람,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볕 한줄기를 맞으며 졸음을 느껴본다.

지식만이 아니라 그들의 감정을 공유해야 그들의 삶을 온전히 알고 느낄 수 있다.

 

Q. 수말수를 통해 야생동물 소모임 사이트(www.yasomo.net)를 알게 됐다.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는 듯 한데 야생동물 수의사에 관심 있는 수의사나 수의대생도 참여할 수 있나?

야생동물소모임은 2000년 3월에 생겼으니 햇수로는 16년이 된 모임이다. 대학원생이던 회원들이 이젠 중견 연구가로 성장할 만큼 시간이 지났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이래저래 바빠서 많이 참여하진 못하고 있다.

야소모는 야생동물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공부하는 모임인데 ‘현장학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많은 강좌와 현장조사, 장비의 활용 등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야생동물 분야에서 현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물이 사는 현장을 알아야 그 동물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야생동물은 한 개체보다 개체군이라는 집단적 규모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때 현장 경험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연회비가 있지만 현장활동 지원이 충분해서 야외활동에 적극 참여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Q. 국내에서 최근 고병원성 AI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야생조류가 전염원으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

고병원성 AI는 지구라는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한 지역에서 검출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조류는 수십만 년에 걸쳐 지구 환경을 이용해왔다. 외적으로는 기후나 계절풍, 토양을 이용하면서 내적으로는 수 많은 병원체들이 서로 투쟁하며 협상해온 것이다.

그 균형추가 근래에 들어 깨지고 있다. 전통적 숙주이던 오리, 기러기류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희생되는 것은 그 흐름이 변화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동성 조류는 짧게는 수백 km, 길게는 1만 km 이상을 이주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지구의 역사에서 결정된 것이다. 여기에 병원체라는 새로운 인자가 유입된다면 지구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인류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도 급격히 변화해왔다. 현대에 이르러 축산업은 커다란 산업이다. 동물권보다는 생산성이나 효율에 초점을 맞춘다. 밀집사육과 비위생적 관리가 빈번해졌다. 그 과정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근본 요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상만 해결하려 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키우는 꼴 밖에는 되지 않는다.

 

Q. 향후 야생동물 수의사의 전망은 어떠한가.

다친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일은 감성적이고 인도적인 측면의 업무다. 때문에 업무의 확장이 나름 제한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야생동물 질병관리 업무는 더욱 확장될 것이다.

새로이 발견되는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의 70% 이상이 야생동물로부터 유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에 의해 가속화된 환경 변화는 질병매개곤충의 발생과 유입을 촉발시킨다. 신종 감염병이 창궐하고 크게 전파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역학, 병리학 등의 지식을 지닌 인재가 요구되는 만큼 수의사도 이에 준비해야 한다. 나아가 생태학적 지식수준을 높인다면 더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야생동물은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름답지 만도 귀엽지 만도 그렇다고 무섭지 만도 않다. 생명을 다루는 일에는 깊은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 지식은 순식간에 얻을 수도, 챙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도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현장에 자주 나가 선배의 삶을 들여다보고 조언을 얻길 바란다. 현장에 가봐야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알 수 있게 된다.

진정성을 가지고 찾아오는 후배를 내치는 선배는 없다. 두려워할 것도 수줍어할 것도 없다. 모르기 때문에 학생이다.

 

Q. 흔치 않은 분야를 개척한 수의사로서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우주에서 단 한 번의 소중한 기회를 잡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이 내 인생에서 뭔가를 하기에는 가장 이른 날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항상 듣는 이야기겠지만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중요한 이야기라 반복해서 듣는 것이다.

1~2년쯤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삶에 충실하여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기회비용이다. 인생 살 길 찾는데 1~2년 못 찾았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 정말 스스로에게 떳떳한 목표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시간은 쏜 살처럼 흐르고, 나이 들어감과 더불어 그 속도는 더해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더욱더 내 인생을 가장 빛낼 길을 찾길 바란다. 어렵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Q. 수말수에서 “지금은 작고 단순한 일에 매몰되어 있을지라도 미래는 결국 그 꿈의 크기에 비례해 다가오는 법” 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수의사님의 꿈은 무엇인가

나이가 들수록 그 꿈이 흐려지는 것 같다. 인생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일 듯 하다. 지금의 꿈이라면 ‘자식에게 존경 받을 수 있는 가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양주영 기자 yangju@dailyv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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