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물 자가진료 금지 논의,핵심은 무엇인가

소모적 논쟁을 너머 동물권 보장을 위한 대안을 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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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자가진료 금지 논의,핵심은 무엇인가 – 방배한강동물병원 유경근

동물 자가진료 금지를 바라보는 우려

최근 강아지농장 문제가 불거진 이후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진료를 제한하자는 논의가 진행중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이것이 동물 진료권에 대한 수의사의 독점을 강화하려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개인적으로 매우 가슴 아픈 말이다.

필자는 현직 임상수의사다. 따라서 이 문제를 편협한 시각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가능한 객관화된 논리적 근거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자가진료 금지에 대해 우려를 하는 측은 자가 진료를 제한하면 유기동물의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고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특히 영세한 사람들이 키우는 동물들의 치료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 상황에 비춰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논리적 접근이다. 

수의학은 아는 만큼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생명을 다뤄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의 전문 교육 및 면허 취득 그리고 숙련의 과정이 필요한 전문적인 분야이다. 당연히 생명을 다루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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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치료로 인한 발생한 화학적 피부 손상. 키우던 개가 피부병이 발생하자 보호자가 임의로 연고를 구입하여 치료를 했다가 호전되기는 커녕, 오히려 피부에 큰 화학적 손상을 입힌 사례이다

수의학적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면허를 가진 사람만이 동물을 진료해야 하는 것은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만 운전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두고 수의사의 진료 독점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돈 없고 시간이 없어서, 혹은 운동감각이 떨어져서 운전면허를 따지 못한 사람들에게 운전을 못하게 하는 것은 권리를 빼앗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의사의 진료를 받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보육교사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예방접종을 놓거나 항생제를 먹이는 것은 옳지 않다. 가난해 치료 받을 돈이 없다고 부모가 직접 자기 아이에게 호르몬 주사를 놓거나 수술을 하면 안 된다.

고아원 아이도 가난한 사람도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에 따라 전문가인 의사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나 사회가 그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옳다. 그래서 사회보장제도도 만들고 의료혜택도 확대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돈도 없고 의사를 만날 기회나 여건도 어려우니 약을 싸고 쉽게 구입해서 스스로 가족을 치료할 수 있도록 자가진료 권한을 주겠다’는 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지 않는다.

유기동물도 제대로 진료 받을 권리가 있다

사회가 발달하고 세상이 점점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동물은 이 지구상에 가장 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동물에게도 최소한의 동물권이 존재하고 그 동물권에 맞는 대우를 해야 하는 것이 스스로 존엄하다고 말하는 만물의 영장, 인간의 도리 아닐까?

유기견이나 사회소외계층의 동물도 모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현실적 제약을 풀어가야 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경제적인 문제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주요 고민이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에 전적으로 책임을 요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수의계가 앞장서 유기동물도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수의사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일지 모른다.

유기견에 대한 진료 봉사활동을 늘리고 개별적으로 사회소외계층에 대해 진료비를 할인해 주는 내부 운동을 하자는 식의 방법은 분명 한계가 있다. 물론 그런 운동 또한 매우 의미가 있고 값진 일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해야 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유기동물을 위한 사회적 기금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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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 수의사 진료 봉사활동 예.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는 매달 1회씩 정기 동물의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선 수의계가 앞장서 유기동물과 사회소외계층의 동물 진료를 돕는 사회적 기금을 만들고 조성해 그들도 제대로 된 진료 시스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자는 제안이 수의계 내부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더 좋은 대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물 자가진료 금지에 대한 소모적이고 쟁점을 벗어난 논쟁이 아니라 제대로 된 동물권 보장하고 실할 수 있는 대안이다.

세상에 모든 권리는 그 권리 당사자들의 손익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권리의 옳고 그름은 그에 따른 이익 여부가 아니라 그 권리가 보편타당한 사회적 가치인지 합리적인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동물에게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에 함부로 꼬리도 자르고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생물학제제(예방접종)를 주사하는 것이 과연 보편타당한 가치에 맞는 행위인가? 수의학적 지식 없이 비전문가의 판단으로 실험이라도 하듯 이런 약 저런 약을 투여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방법인가?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로 그 권리를 악용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렇다고 그 권리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당연히 그 권리를 악용하는 사람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수의계는 그동안 부족했던 자정 부분에 대해 반성하고 더욱 노력해야 한다.

동물에 대한 자가진료가 금지된다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상식적 수준의 자가 투약은 가능하다. 이런 일조차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동물의 자가진료 금지가 실질적으로 동물권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자가진료 논의가 바로 서길 바란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중복 게재됩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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