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수의사회 연례세미나에서 본 국내 돼지열병 현황
제주·연천, 발병양상·추정원인서 차이..현재진행형 롬주 순환, 열병백신관리 점검해야
한국양돈수의사회 2016 연례세미나가 20일과 21일 양일간 대전 라온컨벤션에서 개최됐다.
돼지열병과 구제역에 초점을 맞춘 첫 날 강연 중에서도 돼지열병에 참가자들이 관심이 쏠렸다. 청정지역이던 제주를 포함해 올해만 2건이 발생했고, 제주도의 백신주(롬주) 바이러스 순환문제도 현재진형행이다.
제주, 연천 돼지열병의 추정 발생원인은
올해 돼지열병은 6월 제주도와 9월 경기 연천에서 각각 1건씩 발생했다. 2013년 경남 사천에서 야외주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확인된 후 약 3년만이다.
제주도에서는 롬주 항체에 대한 예찰과정에서 야외주 바이러스 유전자가 확인됐다. 이날 검역본부 역학조사과에 따르면, 해당 농가에서 돼지열병 증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야외주가 분리된 돈방의 모든 돼지를 부검해봐도 별다른 이상소견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연천에서는 7월부터 9월까지 (축주 진술 기준) 200여두의 돼지가 폐사했다. 현장 임상수의사가 돼지열병의 전형적인 부검소견을 확인하기도 했다.
추정되는 발생원인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연천 돼지열병 발병사례를 발표한 검역본부 박성대 주무관은 “아직 역조위 자문을 거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경기 북부지역 인근에 순환하는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농장에 기계적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연천주 바이러스가 인근 야생멧돼지에서 분리된 돼지열병 바이러스와 99% 이상 일치한다는 것이다(5’NCR염기서열 기준). 야생멧돼지에서의 돼지열병 양성사례가 휴전선 인근지역에 집중된다는 점도 이유다.
몽골에서 보고된 바이러스와도 유전자 상동성이 높았지만, 직접적인 유입가능성에는 회의적이었다.
제주 야외주의 경우 중국 후난주와의 유전적 상동성이 가장 높았다.
검역본부 김지혜 주무관은 “돼지열병 상재국인 중국의 바이러스가 직, 간접적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돼지열병 백신접종 미흡 위험..구제역 백신과 섞어 쓰기까지
이날 양돈수의사들은 돼지열병 백신접종이 미흡했을 가능성을 경고했다. 비육돈은 단 1회 접종하다보니 일령에 따라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강경수 원장은 “구제역 백신 항체가와 과태료 문제로 농가들이 구제역 백신접종 일령을 조정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렇게 되면 돼지열병 백신프로그램까지 엉망이 된다”고 꼬집었다.
자돈마다 모체이행항체 수준이 다양하다 보니 접종일령에 따라 백신 1회접종만으로는 면역 형성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재길 박사는 “만약 야외주 바이러스가 잔존해 발병 위험이 있다면 1회접종은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역본부 박성대 주무관은 “최근 일부 농가에서 구제역 백신과 돼지열병 백신을 섞어서 한 번에 찌른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며 이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연천 발생농가의 역학관련 농장 중 돼지열병 백신항체가 음성이었던 농장 1개소도 섞어서 접종했다는 것이다.
제주도서 불가사의하게 퍼지고 있는 롬주
제주도 양돈농가 사이에서 돼지열병 백신주(롬주)에 대한 항체가 연이어 발견되면서 롬주의 자연전파와 병원성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관련 현황을 발표한 제주도 지성동물병원 곽성규 수의사는 “제주 현장에서는 롬주 문제가 심각한데도, 방역당국은 아직까지 명확한 근절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도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돼지열병 백신을 접종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14년 돼지열병 백신주가 오염된 돈단독백신이 제주도에 유통되면서 롬주 검출이 크게 늘었다.
2014년 20개, 2015년 22개, 2016년 8월까지 26개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주로 한림읍 양돈밀집단지 위주로 검출되고 있다.
곽성규 수의사는 “2015년 검출농장 22개소 중 13개소에서 올해에도 항체가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며 백신주의 순환 가능성을 시사했다.
약독화 백신주인 롬주가 농가 사이를 순환하며 병원성을 회복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곽성규 수의사는 야외주 돼지열병 부검소견과 유사한 현장 사례를 소개하면서 “기타 소모성질환과의 연관성과 별개로 롬주의 병원성을 심각하게 토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최근 관련 방역협의과정에서도 2019년까지 롬주 근절을 추진한다는데 공감대가 모였다”며 “롬주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 여러 의혹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정 전염병 신고한 수의사와 농가가 곤란해져선 안 된다”
돼지열병과 같은 악성 가축전염병의 확산 방지는 조기 신고가 필수적이다.
9월 연천 양돈농가의 돼지열병을 진단해 신고한 강경수 원장에게 ‘올해의 양돈수의사상’이 주어지기도 했다.
강 원장은 “법정 전염병 신고문제로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며 신고 앞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수의사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승면 원장은 “가축전염병을 당국에 신고한 농장이나 수의사가 불이익을 겪는다면 ‘다시는 신고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방역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앞서 제8회 공중방역수의사 워크숍에서도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다가 주변 농가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신고기피현상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김경진 원장은 “90년대말부터 열병 박멸정책을 실시해왔지만 여전히 산발적으로 발생한다”며 “야생동물, 외국인 노동자 관리를 포함한 장기적 차원의 박멸계획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