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특별기고②] AI보다 백신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들

한국가금수의사회 윤종웅 회장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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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거부감

고병원성 AI에 대한 백신정책을 얘기하면 찬반이 엇갈린다.

반대하는 입장에선 일단 살처분 정책에 너무 익숙하다.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보단 살처분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에 더 집중한다.

게다가 백신정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막연히 백신정책을 얘기하면 ‘전국 모든 닭과 오리에 백신을 접종하자’라는 말로 들린다. 사실 백신의 세부적인 활용방안은 아주 다양하다.

가령 발생농장 반경 3~10km에 위치한 농장들의 추가 확산을 막기위한 긴급백신(링백신)으로 적용할 수 있다. 매번 AI로 큰 피해를 입는 경기도나 충청도에만 시범적용하는 지역백신 개념도 있다.

꼭 모든 가금류를 접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육계나 오리는 기본적인 살처분 정책을 유지하되, 산란계나 종계에 선택적으로 백신을 적용할 수도 있다.

작게는 동물원의 희귀조류나 종보존이 필요한 개체만 백신을 하고 살리는 방법도 있다. 이들이 지닌 가치와 추가확산 위험을 저울질 해보면, 무조건 죽이는 것보단 훨씬 나은 대책이다.

백신정책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백신을 사용한 후에도 청정국 지위를 회복할 수도 있다. 프랑스, 네덜란드, 홍콩, 러시아에서 이미 성공했던 방식이다.

이러한 정책 결정에는 세밀한 가치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살처분 만으로 충분히 확산을 막을 수 있는가? 없다면 어느 시점에 백신을 도입하는 것이 유리한가? 백신을 쓰고자 한다면 긴급하게 제조 또는 수입할 수 있는가? 제도적인 측면도 고려하고, 관련한 실험도 필요하다.

AI가 발생하지 않은 평소에 여러 상황을 상정한 계획을 마련해두고, 유사시에는 그에 따라 수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장 일이 터지고 고민하기 시작하면 늦다.

 

Sense of Urgency

위기의식(Sense of Urgency)은 현장감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기고(바로가기)에서 현재 우리나라 AI 살처분 정책이 가지는 한계를 다뤘다. 대안이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대안은 백신이다. AI 백신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가?

고병원성 AI 사독백신의 경우, 바이러스의 종류가 달라도 HA혈청형만 일치하면 90% 이상 폐사를 막아낼 수 있다. AI 바이러스 감염 시 배출하는 바이러스량도 현저히 줄어들어 확산속도를 늦출 수 있다.

전파속도를 늦추고 백신접종 개체들을 모두 살처분하면 다시 청정국 지위도 회복할 수 있다. 다양한 혈청형때문에 백신을 못한다는 것은 학문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2014년 H5N8형 AI도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입혔다. 당시에도 백신 도입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만약 H5N8형 AI 사독백신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정책을 만들었다면, 이번 H5N6형 AI에 대한 링백신 개념으로 확산을 막거나, 집중발생지역의 피해규모를 줄이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처럼 강력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다시 유행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때문에 백신 도입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전문가와 방역 경험을 토대로 시간을 다투어 준비해야 한다.

당장 이미 개발된 사독백신을 쓰려고 해도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수입이나 제조로 공급가능한 사독백신을 선택하고, 간단한 효능검사를 통해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기대도 우려도,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모두 이론일 뿐이다.

매년 고병원성 AI에 시달리는 국내 상황에서 부분적으로 백신도입을 시험해본다고 생각하면 부담도 적다. 실패하더라도 기존 방역정책을 병행할 수 있으니 잃을 게 없다. 이미 구제역 사례에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다음 라운드, 다음 겨울, 다음 AI 바이러스를 위해서라도 서둘러 중지를 모으고 최소한 실험과 정책토론이라도 진행시켜 나갔으면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기본으로 돌아가면 더 쉬울 일을 두고 ‘더 쉽고 새로운 방법을 찾겠다’며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빅데이터와 ICT로 AI와 구제역을 막는다고 하지만, 농장이나 축산관계차량 등 기초데이터에서부터 허점투성이다. 이런 데이터베이스가 어떤 효용을 주고 있는 지 모르겠다.

얼지 않는 소독제를 개발한다며 몇 년을 고민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추운 겨울이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 생각을 안했을까?

현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기존 소독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깝다. 열선이 들어간 발판소독조를 개발해 보급하고, 길에 뿌려진 소독제가 어는 문제는 차량이 농장 직전에서 철저히 소독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면역증가제, 사료첨가제 따위로 고병원성 AI를 막겠다는 소리는 꺼내지도 말라. 기침이 심할 때 삼겹살을 많이 먹으면 미세먼지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나 다름 없다. 과학이 아닌 통념일 뿐이다.

 
수의사들이 가진 가장 정교한 도구는 면역학에 기반을 둔 백신이 아니던가? 특히 가금산업은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백신을 활용해왔다.

종류와 투약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위험을 다룰 수 있다.

이미 성공했던 경험도 있다. 고병원성 AI 만큼이나 가금산업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던 뉴캣슬병은 이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국적인 백신정책을 바탕으로 한 끈질긴 노력 끝에 청정국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접어든 지도 이미 5년이 넘었다.

저병원성 인플루엔자 백신도 2007년 도입되면서 이제는 거의 발병이 없는 질병이 되었다.

인체감염 사례가 있는 중국, 베트남 등지의 가금산업은 한국과 판이하게 다르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해서 살아가고 야생동물과 자연에 노출된 중국과 동남아는 이미 토착화(endemic)상태에서 백신이 시작된 경우다.

반면 한국은 닭이 어떤 시설에서 어떻게 사육되는지 밖에선 알아보기조차 힘든 구조다. 일반시민이 AI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관련 종사자만 주의하면 충분하다.

인체감염에 대한 우려로 시도조차 하지 않기보다는 지역적, 부분적 백신시도를 통해 경험치를 늘리며 한발짝 진보하기를 기대해 본다.

위험이 있다고 무조건 피하지 말고, 그 위험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우리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엄밀히 평가해 해결방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교통사고가 무서워 차를 안 만든다는 말과 다를 게 뭔가? 내년에도 AI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어차피 닥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지난 칼럼 : [AI 특별기고 1편] 조류인플루엔자, 살처분만이 해답인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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