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빠르게 발전하는 염기서열 분석법의 수의진단 적용/이규영
긴 역사만큼 신중히 접근하는 美동물보건·실험실진단 분야
미국 UC Davis 수의과대학에서 역학 박사과정 중인 필자는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개최된 2017 제121회 미국동물보건협회(United States Animal Health Association, USAHA) 겸 제60회 미국수의실험실진단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Veterinary Laboratory Diagnosticians, AAVLD)의 공동 연례 학회를 참석했다. (관련기사: 미국동물보건협회· 수의실험진단협회 공동학회, 美샌디에고서 개최)
100년 넘게 미국의 동물보건과 수의실험실진단 분야를 다루어 온 이 학회에는 미생물학부터 병리학, 역학 그리고 생물정보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현장 수의사, 기업,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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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올해는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Next Generation Sequencing)의 수의진단기술에 적용에 관한 논의가 관심을 끌었다.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은 기존 생거 염기서열분석법(Sanger Sequencing)에 비해 기술적으로 대폭 향상된 최신 염기서열분석법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Illumina사에서 개발한 차세대 염기서열법은 DNA나 RNA를 적정 크기로 잘라 여러 조각의 염기서열을 한꺼번에 해석한 뒤, 조각조각 분석된 이들 염기서열을 빅 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원래의 형태로 재조합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은 기존 방법에 비해 가격과 시간, 실험적 절차의 복잡성을 대폭 개선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로 적용범위를 확장하고 있는데, 특히 인의분야에서 유전병이나 암을 진단하는데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수의진단기술, 그 중에서도 감염병 진단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학회에서는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을 수의진단에 적용한 ‘산탄식 염기서열 분석(Shotgun sequencing)’을 선보였다.
‘산탄식 염기서열 분석법’은 메타지노믹스(Metagenomic)와 분류정보학(Taxonomics) 그리고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을 융합한 새로운 진단방법이다. 동물의 분변이나 혈액 등 검체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물의 DNA와 RNA 염기서열을 메타지노믹스를 통해 분리하여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으로 염기서열을 확인한다.
이렇게 확인된 염기서열을 분류정보학(Taxonomics)에 기반한 빅 데이터 분석법으로 가장 근접한 미생물 종을 찾아 검출하는 방식이다. 이를 이용하면 한번의 실험으로 샘플 내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물을 검출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학회에서 차세대 염기서열법을 활용, 미국에서 검출된 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자역학(Molecular epidemiology)으로 해석한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의 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표준실험실진단센터인 UC Davis 수의과대학 말 보건센터에서 최근 7년간 검출된 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HA 단백질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해당 바이러스가 검출된 위치와 시간을 유전자은행(Genbank)에 등재된 전 세계 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염기서열과 계통수를 비교분석(Phylogenetic analysis)을 통해, 병원체의 진화과정을 추정하여 잠재적 전파의 경로를 역추적하였다.
동시에 말 인플루엔자의 OIE 표준 백신주(Ohio/2003)와 염기서열에 의한 아미노산서열의 변화를 확인하여, 잠재적인 백신면역회피 가능성을 발표했다.
이처럼 차세대 염기서열법에 의해 접근성이 높아진 병원체의 염기서열 분석법은 여러 병원체 간의 유전적 근연관계를 확인함으로써 병원체 전파경로를 추정하거나 백신주와의 차이, 항생제 내성을 평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은 수의실험실진단기술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번 학회에 모인 수의분야 연구자, 현장 수의사, 정부기관과 업계는 차세대 기술이 지닌 다양한 한계점도 심도있게 논의했다.
우선 실험비용만 $1000(한화 약 110만원)이 넘는 것은 다른 진단법과 비교했을 때 부담이 크다. 가령 브루셀라는 $35면 간단한 실험으로도 검출이 가능한데, 고가의 진단법을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또한 검출된 모든 미생물들이 실제로 병원성을 나타내는 병원체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미지수다. 실험실과정이 많이 단순화 되었지만, 여전히 빅데이터 분석은 여전히 기술적으로 어렵고 해결해야할 오류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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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회에서 엿본 미국의 수의실험실진단분야는 새로운 과학지식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신기술 적용에 수의사들이 인식하는 한계점을 치열하게 논의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 동물보건분야가,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 속에서 치열한 토론의 과정을 통해 다듬어졌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각 분야 수의사들의 뜨거운 논의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보다도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