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4. 인류 생태계의 보존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내에는 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이 설치되어 있다. 야생동물의학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야생동물의 신체구조뿐만 아니라 환경이나 생태학 등의 분야까지 탐구해야 한다. 야생동물 담당 수의사는 조난을 당한 야생동물을 구조 및 치료를 해야 하고 다시 야생에 돌아가 적응할 수 있게 재활 운동을 시켜야 한다. 이러려면 해당 야생동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생태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은 포유류 10여 종, 조류 13종, 보호동물 포유류 6종, 조류 46종이 있다. 야생동식물보호법에는 멸종 위기 야생동물을 크게 1,2급으로 나누고 있다.
이외에도 조난야생동물을 치료할 수 있는 실체적인 단체가 필요하고 질병, 인수공통 전염병(人獸共通傳染病)의 역학 및 병리학적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인수공통전염병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걸리는 전염병을 말한다. 야생의 질병역학과 병리학 연구는 질병 전체를 관리, 예방하는데 자료로 활용 가능하며 나아가 국가 정책 입안의 중요한 흐름을 결정할 수 있다. 사스(sars, 심급성호흡기증후군),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전염병 등 신종 전염병의 경우 야생동물과 가축, 인간의 공통 전염병으로 야생동물을 통해 이들 전염병을 연구하는 것은 인류의 건강과 직결된다.
야생동물 질병 연구를 통해 생태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들의 질병은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개체군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가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므로 야생동물 질병에 대한 연구를 하면 생태계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이상 징후를 알아내고 그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게 된다.
DDT는 생태계 순환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던 맹금류나 어류를 포식하는 조류에 지속적으로 축적돼 그 개체의 알껍질 두께를 얇게 하며 전반적인 부화율을 떨어뜨린다. 다이옥신 등 환경 호르몬이 야생동물에게 지속적으로 축적되면 성호르몬이나 생식 기관 형성과 갑상선 호르몬 분비 장애 등을 일으킨다. 그래서 특정 지역 야생동물 개체군 전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산업 활동에 대한 규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생태계 다양성 보전을 위한 야생동물 관리와 보전 사업에 중요하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의 보전과 복원은 현재의 생태계를 안정화시킬 뿐 아니라, 다양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사회는 이러한 동물들의 복원과 관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멸종 동물의 복원 사업에는 해당 동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기본적인 연구를 비롯해 검역 문제, 포획 문제, 번식, 생리, 병리학적 접근 등 길은 참으로 복잡하게 열려 있다. 연구를 거듭하면 대기, 수질, 토양 오염과 같은 환경오염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개념과 기술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동시에 환경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존재다. 인류는 야생의 많은 동식물, 균류, 바이러스 등을 통해 인류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모기에게 물리지 않는 야생동물에게서 특이 물질을 찾아내 모기 퇴치제를 개발해서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야생동물의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보험과 다름없다.
2017년 3월 16일 세계적인 희귀동물인 ‘황금머리사자 타마린’ 이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 들어와 국내에선 처음으로 일반에 5일간 공개되었다. 아마존 일부 지역에 사는 황금머리사자 타마린은 야생에 6천~1만 마리 정도만 남은 심각한 멸종위기 동물이다. 에버랜드 측에서는 희귀동물 연구 및 보존을 위해 4마리를 도입해, 적응기간과 사육사와의 교감과정을 거쳐 일반인에게 공개한 것이다.
에버랜드는 2003년 환경부로부터 ‘서식지 외 종 보전기관’으로 인증을 받은 바 있다. 동물원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희귀동물을 보존하고 연구하여 다시 번식하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관람객을 모으기 위해 희귀한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진행된 것이 아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지구를 개척하면서 수많은 동물을 직접, 간접적으로 멸종하게 만든 주범이었다. 그간 무분별한 도시 개발과 산림 훼손으로 동물의 서식지가 축소되고, 환경오염과 기온변화가 동물들의 생태계를 급격히 파괴했다. 인간의 탐욕이 수많은 생명체를 멸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동물들의 멸종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동물을 보호하고 지켜줄 의무가 있다.
1966년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에서는 멸종 가능성이 있는 야생생물의 명단(Red-data book)을 만들어 그 분포와 생식상황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안내책자를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무질서한 자연파괴를 방지하고, 멸종 위기에 닥친 동식물을 보호하자는 움직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2~5년마다 갱신해서 발간하는 IUCN 자료집에 따르면, 전체 포유류의 1/4, 조류의 1/8, 파충류의 1/4, 양서류의 1/5, 어류의 30%에 달하는 1만1천종이 멀지 않은 장래에 멸종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야생 동물의 멸종을 유일하게 막을 수 있는 인간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호하고 있다. 이 법에는 야생생물은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공동자산이므로, 지금 우리 세대는 야생생물과 그 서식환경을 적극 보호하여 미래세대에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여, 야생생물이 멸종되지 아니하고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해야 할 것을 기본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때리거나 산 채로 태우는 등 혐오감을 주는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포획 감금하여 고통을 주거나 상처를 입히는 행위, 살아 있는 상태에서 혈액· 쓸개·내장 또는 생체 일부를 채취하거나 채취하는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 목을 매달거나 독극물을 사용하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학대 행위를 일절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야생동물 질병의 예방과 확산 방지, 야생동물 질병관리 기본계획의 수립과 시행 등을 명시하고 있다.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야생동물의 질병 치료와 확산 방지 등의 조치가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의사는 야생동물의 종 보존과 질병 연구를 통해 멸종 위기의 동물을 구할 수가 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1차적 행동이라면, 질병 치료를 통한 야생동물 구제는 보다 적극적인 2차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야생동물의료센터는 야생동물들을 위한 야전병원의 역할을 한다. 국립공원 내에서 다치거나 탈진한 상태로 발견된 야생동물 가운데 집중치료가 필요한 동물을 치료하는 곳이다. 야생동물 치료는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치료보다 훨씬 힘들고 까다롭다. 야생동물은 기력이 있는 한 인간이 자신에게 손대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발버둥 치다 부상이 악화되기도 하고, 의료진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개 이곳에서 치료받는 동물들의 대다수는 멸종위기종 또는 천연기념물들이다. 야생동물의 치료와 보호는 오직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인간만이 가진 위대한 능력을 적극 활용해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수의사들은 적극 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들어 수의산과학(獸醫産科學) 지식을 바탕으로 체세포 복제 기술을 통해 멸종된 동물을 다시 복원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최근 서울대공원 종보전연구실에서는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남생이, 두꺼비, 삵, 도롱뇽 등을 보전, 복원하는 성과를 냈다. 멸종 동물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종 보전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인간없는 세상』이란 책이 있다. 인간이란 한 종이 사라지고 나면 인간이 남긴 지구상에 수많은 유산들이 수 십 억년에 걸쳐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논픽션 형식으로 풀어본 책이다. 똑같이 『동물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만약 인간 주변에 동물들이 모두 다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동물이 사라지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과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동물이 사라지면 우리가 당장 육식을 못하게 될 뿐 아니라, 각종 의약품, 가죽제품, 털옷 등 동물을 이용한 수많은 물건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생기는 불편함부터 떠 올릴 것이다. 동물과의 유대관계가 사라지면서, 인간은 삭막한 세상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보다 잔인한 투쟁을 하게 될 것이다. 동물이 없다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없게 될 것이고, 우리 문명은 크게 퇴보를 할 수밖에 없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 인간은 새로운 재앙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처음부터 동물 없이 지구상에 오직 인간만 살았다면 결코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문명을 만들지 못했을 것임은 너무도 명약관화한 것이다.
생태계에서 다양성 보존은 우리 인간이 건강하게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생물다양성 파괴를 막고, 다시금 지구상에 다양한 생명체가 균형을 이루어 살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희귀동물의 보존이 곧 인류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