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정도관리 사각지대 3부] 진단검사에도 건강검진이 필요하다
동물병원 진료의 핵심은 검사입니다. 영상진단과 함께 혈액, 소변 등 다양한 검체에 대한 임상화학적 검사는 진단과 치료계획 수립, 예후평가의 기준이 됩니다.
이처럼 검사는 진료의 신뢰성을 담보합니다. 그렇다면 검사의 신뢰성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을 ‘정도관리’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본지가 기획한 [동물병원 정도관리 사각지대] 3부작은 동물병원 진단검사기기의 정확도·정밀도 실태와 정도관리 현황, 의료계 사례를 바탕으로 동물병원 정도관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2부 내부·외부정도관리, 동물병원은 없다](보러 가기)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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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물병원 진단기기의 정확도, 정밀도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CBC, 혈액화학검사 등 진단의 토대를 이루는 기본검사의 신뢰도를 담보할 수 없다면 반려동물 임상의 발전도 모래성 쌓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의료계 외부정도관리, 1,700개 의료기관·검사항목 300종..연평균 2~3회 실시
의료기관의 검사실은 진단검사의학 전문의와 임상병리사를 중심으로 내부정도관리에 나서는 동시에, 전국 규모의 ‘외부 신빙도 평가’로 외부정도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1976년 창립된 대한임상검사정도관리협회는 매년 각 병의원의 진단검사실을 대상으로 외부 신빙도 평가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외부 신빙도 평가에 참여하는 의료기관 검사실은 전국 1,700여개소에 이른다. 100여개 수준이던 평가대상 검사항목 수는 작년부터 300여개로 늘어났다.
정도관리협회 총무부장 장윤환 원자력병원 교수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참여율은 100%에 가깝고 보건소나 군 의무대, 의원급 회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외부 신빙도 평가는 항목별로 실시횟수가 다르지만 평균적으로는 연간 2~3회 실시된다.
협회가 정상수치와 비정상수치로 설정된 정도관리물질을 배송하면 각 의료기관 검사실이 결과값을 전산 입력한다. 협회는 모인 결과값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각 기관에 결과보고서를 회신한다.
장윤환 교수는 “검사항목별로 각 검사실의 결과값이 전체 분포 중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설정된 결과값 근처에 모여 있기 마련인데, 특정 검사값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해당 검사실이 검사실시과정 전반을 자체적으로 점검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내부정도관리도 체계화되어 있다. 검사실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는 만큼 동물병원과 달리 검사 전 검체 채취부터 접수까지의 과정이 세분화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시약관리, 칼리브레이션, 안전상 유의사항, 정도관리물질을 활용한 자체 테스트 과정 등 검사과정 전반을 구체화된 가이드라인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기록관리한다. 매일 반복되는 자체 테스트 수치들을 기록해 정기적으로 통계분석하고, 그 결과를 정도관리 시행과정에 재반영한다.
`진단기기도 평소에 건강검진을` 월 1회 내부정도관리 권고..인하우스 위주 환경은 걸림돌
동물용 진단검사기기 업계 관계자는 “검사기기에도 건강검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기에 문제가 없는지 평소에 점검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동물용 혈액검사기기의 경우 월 1회 이상 정도관리물질을 통한 자체 테스트가 권고된다.
이 관계자는 “정도관리물질을 구입해 자체 테스트를 실시하는 곳은 대학 동물병원을 포함해도 손에 꼽을 정도”라며 “특정 검사가 갑자기 신뢰도를 잃으면 관련 진료가 일순간 마비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평소에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이덱스 제품군을 기준으로 혈액화학검사기기용 정도관리물질은 1만원 이하의 금액으로도 구입할 수 있다. 개봉 후 24시간 이내에 사용해야 하지만, 결과값이 이상할 경우 등 추가검사가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십수회분의 분량을 제공한다.
혈액화학검사보다 정도관리 필요성이 더 큰 CBC의 경우, 정도관리물질은 개봉 후 2주 동안 매일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다만 혈액화학에 비해 가격이 높은 편으로, 아이덱스의 CBC용 정도관리물질 ‘L1, L2’는 세트 구매 시 13만원대, L2 단독 구매시 7만원대로 책정됐다.
경기지역 동물병원의 B원장은 “일선 동물병원 환경에서 매일 정도관리물질과 키트 비용을 부담해가며 내부정도관리를 실시하기는 쉽지 않다”며 “별도의 검사실로 진단검사가 집중되는 의료계와, 인하우스 검사 비중이 높은 동물병원의 환경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의료계에서는 전문의, 임상병리사 등 전문인력이 관련 교육을 받아 검사와 정도관리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각 동물병원에서 진료와 검사를 모두 담당하는 수의사가 강도 높은 정도관리업무를 수행하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업체 측이 정기적인 방문 정도관리를 실시하고, 그에 필요한 비용은 동물병원이 일정부분 부담하는 상부상조 형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도 동물병원들이 나름대로 업체 담당인력을 초청하거나 정기적인 서비스를 받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보다 체계화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B원장은 “지금도 구입 상담 때는 (위 제안처럼) 해주겠다고 말하지만, 일단 구매한 후에는 원장이 부르지 않는 한 때맞춰 오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는 쓴웃음도 덧붙였다.
외부정도관리가 현실적 대안? ‘돈 들어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먼저
동물병원 대상 외부정도관리 연구를 실시한 나기정 충북대 교수는 “국내 동물병원 환경에서 내부정도관리를 철저히 시행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외부정도관리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의료계의 임상검사정도관리협회처럼 큰 조직은 아니더라도, 검체를 보내고 통계자료를 분석할 주체를 동물병원 외부에 구성할 수만 있다면, 동물병원의 참여의지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관건은 일선 동물병원의 의지와 비용부담 문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동물병원들은 ‘정도관리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 참여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지만, 비용문제를 두고서는 시각이 엇갈렸다.
서울지역 동물병원의 A원장은 “정도관리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검사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참여하고 싶다”며 “검사수치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진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경기지역의 D원장은 “소규모 병원에서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기계값도 큰 부담”이라며 “정도관리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1회성 평가면 몰라도 정기적으로 비용을 들여야 하는 문제라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외부 신빙도 평가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의료기관들이 부담한다. 정도관리협회 회비와도 별개로 외부 신빙도 평가 참가비를 따로 지불한다.
외부 신빙도 평가 5대 기본항목인 CBC, 혈액화학, 소변검사, 대변검사, 수혈 관련 혈액형 검사에만 참가한다면 비용은 연간 50만원 수준이다.
정도관리협회 학술부장 이영경 한림의대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업계로부터 검사와 관련한 후원은 받지 않는다”며 “정확한 검사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도관리는 의료기관의 당연한 책무이며 그에 대한 공감대도 확고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영경 교수는 “진단기기도 정도관리물질도 결국 사서 쓰는 제품인데, 외부정도관리에 관련 업체의 후원을 받게 되면 후원사 제품의 결과가 좋은 쪽으로 편향이 생길 우려가 크다”며 “의료기관에 대한 리베이트로 해석될 여지도 다분하다”고 덧붙였다.
나기정 교수는 “정확한 검사결과를 통해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동물병원이 진단검사의 수가를 정할 때 정도관리에 소요되는 비용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병원장이나 업체의 일방적인 비용부담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정도관리 환경을 조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대학도 일선 병원들을 대상으로 정도관리의 필요성을 환기하고 연구차원의 외부정도관리를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며 “2018년에는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석법을 활용한 외부정도관리 프로그램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