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동물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17. 숲과 도시에서 쫓겨난 동물들
17세기부터 세계는 인구 폭증의 시대로 접어든다. 청나라(1616~1912)시대 약 300년 동안 중국의 인구는 1억에서 4억 3천만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조선 역시 이때 인구가 6백만에서 1천 7백만으로 크게 늘었다.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인구가 크게 증가한 유럽의 경우, 신천지를 찾아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남부 등으로 대량 이주하기 시작한다.
인구가 급증하자, 사람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숲을 파괴하고 경작지를 늘렸다. 또 산업혁명이 일어나 상품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많은 지하자원을 소비하게 되었고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많은 숲이 파괴되었다.
조선의 경우를 보자. 조선은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한 나라였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호랑이를 잡는 포호(捕虎)정책을 실시했다.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고 소를 잡아먹기도 했다. 농민들이나 화전민들에게 가장 무서운 동물이었다. 그래서 조선 정부는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잡는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전문적인 포수들을 두고 1년에 수백 마리의 호랑이를 잡았다. 호랑이 가죽은 명나라에 보내는 진상품으로 필요했고, 가격도 비싸서, 용감한 무사들이라면 호랑이를 사냥하고 싶어 했다. 그러자 19세기에 이르러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는 일이 사라져만 갔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는 해로운 맹수를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자 일본에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같은 호사꾼들이 우르르 몰려와 본격적으로 호랑이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쓴 한국 호랑이 사냥기인『정호기(征虎記)』에 따르면 1917년부터 1924년까지 사살된 호랑이가 89마리, 표범이 521마리가 된다고 한다. 그나마 얼마 남아 있던 한국 호랑이와 표범이 이때 거의 멸종하다시피 되었다. ‘조선조에서 펼쳤던 착호갑사의 뒤를 잇는 것뿐이다’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에 없는 최고 맹수인 호랑이 사냥은 그들에게는 일종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호랑이가 줄어든 것이 착호갑사나, 일본인 사냥꾼 때문만은 아니다. 17세기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낮아졌다. 조선에서는 방을 따뜻하게 하는 온돌이 널리 보급된다. 온돌 보급으로 땔감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나무를 많이 베어 버리자 산이 헐벗게 되었다.
헐벗은 붉은 산에서 아래 논밭으로 내려오는 토사로 인해 종종 농사를 망치는 일이 생겨났다. 또 농민들은 부족한 농토를 해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산을 개간해 화전(火田)을 만들었다. 화전을 만들면 숲이 파괴되고 없어진다. 그 결과 울창하던 조선의 숲은 점점 사라졌다.
1910년 전국의 임목축적량이 1헥타르 당 10㎥도 안 되었다. 특히 전남과 경북은 5.2~5.3㎥ 정도에 불과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입목축적량이 약 130㎥인 것을 고려하면, 당시 조선의 산들은 모두 헐벗은 민둥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숲이 사라지니 작은 동물들의 먹이인 도토리 등도 사라졌다. 이로 인해 하위 포식자인 다람쥐나 토끼 같은 설치류가 줄어들었다. 그러자 상위 포식자인 족제비, 오소리, 너구리 등도 줄었다. 마침내 이들의 최고 포식자인 호랑이와 같은 대형 맹수류도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다.
조선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당시 유럽의 열강들이 식민지 개척을 위한 대항해시대를 열면서, 수많은 배를 만들었다. 그 많은 배들을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또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석탄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필요한 집이나 공장 등 건축용 나무 수요 역시 엄청나게 늘어났다. 또 코코넛, 커피, 담배, 고무 등 플랜테이션 농업이 일반화되면서 열대우림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대한 면화 농장과 목장이 생기면서 북미의 수많은 숲들이 자연히 파괴되었다. 20세기 말부터 세계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일대의 원시림도 소를 키우기 위한 목장과, 옥수수나 밀을 생산하기 위한 농장 건설 등으로 인해 수없이 파괴되고 있는 중이다.
숲이 없어지면서 동물은 살 곳을 잃어가고 있다. 숲에서 쫓겨난 동물은 자연히 개체수가 줄어들었다. 여기에 인간들의 욕심이 겹쳐 밀렵 등에 의해 멸종된 동물도 생겨났다. 영국이 호주 태즈메이니아 섬을 개척하면서, 그곳에만 서식하고 있는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이 멸종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문명을 뜻하는 ‘civilization’이란 단어는 라틴어의 ‘civilis’에서 유래되었는데, 시민을 뜻한다. 상냥하고 예의 바르고 정중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농촌 삶에 비해 도시적이고 정치적인 삶이 우월하다는 의식이 담긴 말이다. 인간은 도시를 발전시킨다는 핑계로 무분별하게 숲을 파괴하고, 도시를 확장했다.
20세기 들어와서 인간은 광산, 목장, 골프장, 군사 훈련장 등 다양한 용도로 자연을 더욱더 파괴하면서까지 인간을 위한 시설물을 만들었다. 인류는 문명사회 건설이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동물의 생태환경을 무시해 왔다. 인간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동물은 점점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동물은 숲에서만 쫓겨난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도 쫓겨났다. 인간이 집을 짓고 살게 된 것은 다른 동물들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집 가(家)라는 글자는 돼지 시(豕) 위에 집 면(宀)을 합친 글자인데, 돼지가 아래에 있고 그 위에 사람이 사는 공간을 지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글자가 나온 것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뱀의 천적인 돼지를 아래층에 살게 하면, 위에 있는 사람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뱀은 물론, 호랑이, 늑대 등 맹수로부터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시설이 바로 집이다. 나라에서는 마을 안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마을 둘레에 해자를 파거나 목책 또는 성벽을 쌓았다. 외침에 대비한 성도 있지만, 부수적으로는 맹수들이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호랑이나 늑대 같은 큰 동물뿐만 아니라, 여우, 오소리, 살쾡이 등 작은 육식동물도 노약자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때문에 사람들은 모여 살면서 짐승들의 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마을을 만들었다. 마을에서 발전한 도시는 당연히 도시인의 안전을 위한 시설물을 만들었다. 성벽을 쌓고, 성벽에 군사들을 배치해두기도 했다.
도시는 처음 탄생할 때부터 인간의 안전을 위해 맹수 등의 동물을 배척하는 구조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맹수들은 도시에서 배척당했지만, 인간이 길들인 가축들은 도시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 수 있었다. 도시의 길에는 소나 말, 당나귀 등이 끄는 수레가 지나다녔다. 사람들은 말을 타고 도시를 활보하기도 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양이나 소 등을 이끌고 도시 바깥으로 나가 방목을 하거나,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동물이 도시에서 쫓겨나기 시작한다. 쫓겨난 대표적인 동물이 소와 말이다. 말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1914~1918년에 발발했던 제1차 세계대전만 하더라도 엄청난 말이 동원됐다. 말은 전쟁터에서 군수품을 운반하는 수레와 대포를 끌었다. 기병대도 여전히 활약했다. 하지만 세계대전 이후 급속하게 늘어난 자동차로 말미암아 운송수단으로써의 말의 위상은 크게 손상됐다.
말이 기병과 교통수단의 위상을 잃자, 승마장이나 경마장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로 전락해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번잡한 서울에서도 말과 당나귀가 끄는 달구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농촌에서조차 달구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서 도리어 교통의 방해물이 된 것이다.
소도 마찬가지다. 비록 계획에 의해 도시로 편입되었지만, 도시 속에도 논과 밭이 적지 않았다. 소는 농사에도 사용되었고, 벽돌공장이나 시장에서 물건을 실어 나르는 달구지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 속의 논과 밭은 점점 아파트나 상업 용지 등으로 바뀌면서 도시 농부들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 전 세계적이다. 인도처럼 소를 숭배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소나 말 같은 대형가축을 보기란 매우 어려워졌다.
인간은 소에게 농사일을, 말에게 군대에서 기마의 역할, 그리고 두 동물 공히 운송수단의 역할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기계문명의 발달은 소와 말에 대한 인간의 관심을 크게 떨어뜨렸다. 이제 말은 경마용으로, 소는 고기와 우유를 제공해주는 용도로 그치게 되었다. 경마용 말은 특정한 곳에서만 필요로 하고, 소는 대규모 목장에서 키워질 뿐, 도시에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필요가 없어졌다.
소와 말이 도시에서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던 시절, 이들이 길거리에 쏟아내는 배설물은 도시 위생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도시에서 깨끗하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동물은 추방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한때 청계천 4가쯤에 있던 마시장이, 조선 후기에는 청계천 6가 쪽으로 밀려난 적이 있었다.
1963년부터 서울에서 하루에 소 250여 마리, 돼지 2천 마리가 도축되던 마장동 도축장은 도시개발로 인해 1998년 문을 닫게 되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도축장 없이 단순 도매시장의 역할만 하고 있다. 도시가 커지면서 동물들도 점점 멀어져갔다. 1950년 영국은 도시주변의 녹지공간의 개발을 제한해서 자연환경을 보전하자는 취지로 그린벨트를 지정했다.
우리나라도 과밀도시의 방지,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 보존과 대기오염 예방, 상수원 보호 등을 위해 1971년부터 그린벨트를 지정했다. 하지만 도시가 커질수록 그린벨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린벨트가 해제된 지역이 늘어났다.
그곳에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점차 도시화 되어갔다. 그린벨트가 축소되자 도시인들이 자연에 사는 동물을 접하려면, 더 먼 곳까지 나가야 했다. 도시가 확대될수록 동물은 인간으로부터 더욱 멀어진 셈이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소를 비롯한 가축의 배설물과 냄새 등을 싫어하지만, 그 고기는 여전히 선호한다. 사람들은 일부 반려동물을 제외하면, 동물을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닌 고기 상태로만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도시인들은 인간이 동물과 더불어 존재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차츰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매연과 시멘트로 이루어진 삭막한 도시의 공간은 야생동물의 생활 환경으로는 낙제점에 가깝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자주 볼 수 있었던 철새인 제비를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멧돼지를 비롯한 야생동물이 도시에 나타났다는 것이 뉴스가 될 정도로, 야생동물들은 이제 도시로부터 완전히 쫓겨나고 말았다.
가축들도 개와 고양이처럼 도시 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반려동물을 제외하곤 도시로부터 추방당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동물을 다시 도시로 불러올 수도 없다. 도시에 호랑이가 마구 출몰한다면, 사람들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사무실로 출근하는데 엄청난 공포에 떨어야 할 것이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도심 도로에 양 떼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면, 심각한 교통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이처럼 현대 도시문명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피해를 주거나, 별다른 이익을 주지 않는 동물을 배척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도시문명이 발달할수록 많은 동물은 점점 설 땅을 잃어갈 것이다.
소중한 동물들이 빠르게 멸종하게 되자, 인류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미 많은 동물이 사라져버렸으므로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간의 깨우침은 때늦은 감이 있다. 그렇지만 늦게나마 동물을 보호해야 함을 깨우쳤으니, 이제라도 동물들을 잘 보호해서 지구촌에 사는 많은 동물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동물과 수의학’ 연재(보기)
*’인류 역사를 바꾼 동물과 수의학’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데일리벳 연재는 이 글로 마무리 합니다(책 소개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