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의학 특집①] 평성수의축산대학, 연간 300명 수의사 배출
북한의 수의방역 실패는 우리나라에도 악영향...수의분야 교류 필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4월 27일(금) 판문점에서 개최됐다. 이날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 ‘각계각층의 다방면적 교류·협력 활성화’가 담기면서, 남북의 수의학 교류 재개 가능성이 언급된다.
우리나라 수의계는 2000년대, 당시 대한수의사회장이던 이길재 회장의 건의를 현대그룹이 받아들여 시작된 ‘통일농수산협력사업’에 참여한 바 있다. 수의사, 사료회사, 종돈회사 등이 협력하여 금강산 지역에 3개의 양돈장을 건설하고, 양돈사업팀 소속 수의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북한의 양돈장을 방문하여 점검·지도했다.
평양에도 대규모 양돈장 건설이 추진됐으나 2010년 이후 남북관계가 냉각되며 모든 논의가 중단됐다.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간의 교류가 다시 시작되면, 수의분야 교류도 재개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데일리벳에서 ‘건국대 북한축산연구소’, ‘(사)통일농수산사업단’ 자료와 ‘북한의 수의방역 현황(KDI-한국개발연구원), ‘북한축산의 잠재력과 납북협력을 통한 북한축산의 발전방향(한국국제농업개발학회)’, 탈북 수의사 자료 등을 바탕으로 ①북한 수의대 및 수의방역조직 ②북한의 수의축산현황 ③과거 진행된 수의분야 협력사업 등 ‘북한 수의학특집’ 시리즈를 연이어 게재한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 사진 – 청와대 제공)
북한의 유일한 수의과대학, 평성수의축산대학
김일성종합대학 수의축산학과→원산농업대학 축산학부→강계수의축산대학→평성수의축산대학
북한의 수의과대학은 1946년 10월 개교한 ‘김일성종합대학’에 최초로 만들어졌다. 당시 농학부 산하에 있던 수의축산학과가 북한 최초의 수의학과다.
이후 1948년 김일성종합대학 수의축산학과가 별도로 분리되어 원산농업대학의 축산학부로 개편됐다.
1954년 11월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수의축산대학을 설치하고 수의축산 기술자 양성사업을 강화한다”는 결정이 나온 다음, 1955년 8월 5일 원산농업대학 축산학부가 모체가 되어 강계수의축산대학이 설립됐다. 강계수의축산대학은 이후 평성수의축산대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재 평성수의축산대학에는 수의학부, 가금학부, 축산학부 등 3개의 학부가 있으며, 먹이가공과, 축산기계과, 수의축산과 등 3개의 전문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연구소, 가축병원, 실습목장도 갖춰져 있다.
평성수의축산대학에서 매년 배출되는 수의사는 약 300명 내외다.
예과 1년, 본과 5년 등 총 6년의 과정으로, 우리나라와 수의과대학(6년제)과 동일하다.
그 밖에 평양농업대학, 사리원농업대학, 원산농업대학에 수의과가 개설되어 있으나, 각 지방농업대학은 수의사를 양성하지 않고, 축산경영기술자 양성을 담당한다.
1947년 제정된 수의사 시험규정 1955년에 폐지, 졸업생에게 수의사 자격 인정
북한은 1947년 2월 20일 ‘북조선 수의사규정(농림국포고 제17호)’과 ‘북조선 수의사 시험규정(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농림국포고 제18회)’을 제정했다.
이 2개의 규정은 1950년 6월 3일 각각 ‘수의사에 관한규정(농림성규칙 제10호)’과 ‘수의사 검정시험에 관한규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농림성규칙 제9호)’으로 개정된다.
하지만, 1955년 수의축산대학이 설립되고 전문 수의사교육을 받은 졸업생이 배출됨에 따라 수의사 시험제도를 폐지하고 졸업생에게 수의사 자격을 인정해 주고 있다.
2004년 기준 우리나라보다 많았던 북한 수의사 수
현재 북한의 수의사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04년 OIE(세계동물보건기구)자료에 따르면, 2004년 당시 북한 내 수의사 인원은 10,194명으로 당시 우리나라 수의사 수(9,769명)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려동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만큼, 북한의 수의사들은 대부분 축산 분야 또는 수의 공직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 수의사로 일하다가 탈북한 사람들 역시 상당수 수의축산 분야 공무원 출신이다.
(사)통일농수산사업단 양돈사업팀장으로 활동했던 김준영 수의사는 “북한의 수의사는 주로 검역, 방역업무에 종사하고, 수의사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의지는 높으나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일성 “첫째도 방역, 둘째도 방역, 셋째도 방역”
우리나라보다 수의방역국 먼저 설립한 ‘북한’
북한의 수의방역조직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1954년 김일성이 직접 “첫째도 방역, 둘째도 방역, 셋째도 방역”이라고 말할 정도로 수의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947년에 이미 농림성 산하 수의방역소를 설치하고, 도 및 군 인민위원회 수의방역조직 산하 가축방역소, 가축병원을 설치했다. 1958년에는 농업과학원 산하 수의학연구소를 ‘수의축산학연구소’로 승격시켜 가축전염병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1960년대에는 기존 가축병원들을 수의방역소로 개편하고 수의방역용 약품을 증산하는 등 수의방역사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역대 최초로 ‘방역정책국’이 신설됐으나, 북한은 이미 농업성 아래 ‘수의방역국’을 설치하여 체계적인 방역 조직을 우리보다 빨리 갖췄다.
농업성 수의방역국 산하에는 ‘중앙수의방역소’가 존재한다. 가축위생관리 및 가축질병 예방·방역하는 지역 수의방역소는 북한 전역에 200여개 설치되어 있다.
수의방역소, 가축병원, 수의초소, 수의방역대, 국경수의 검역소 등은 상설되어 있으며, 수의방역위원회, 기동방역대 등은 비상설기구로 운영된다.
체계는 잘 갖췄지만 경제난 때문에 제 기능 못 해
수의방역 책임도 ‘자력갱생’을 내세워 주민에게 전가
수의방역체계는 잘 갖췄지만 실제로 북한의 방역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1990년대 경제난에 따른 재원 부족으로, 수의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수의방역 현황’에는 “경제난 이후 북한에서는 사료부족에 따른 가축의 면역력 저하, 비위생적인 축사 관리에 따른 질병 위험 증가, 수의약품 부족, 재정부족에 따른 방역 기술 답보, 개인 농가에 의한 무질서한 가축사육 등 수의방역의 취약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 당국이 ‘수의방역정책’의 책임을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주민에게 전가하면서, 수의방역사업이 형태만 존재할 뿐 상당히 위축되고 만 것이다.
즉, 현재 북한의 수의방역은 ‘체계는 갖췄지만,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북한의 수의방역 실패는 우리나라에도 악영향
한편, 북한의 수의방역 실패는 우리나라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천과 지하수가 직접 연결되어 있으므로 감염된 가축의 분뇨 및 각종 병원성 물질들이 전파될 가능성이 크다. 수인성 전염병이나, 공기매개성 전염병, 그리고 야생동물, 모기 등에 의한 전염병 전파도 가능하다. 인수공통전염병의 전파 우려도 크다.
북한 당국이 북한 지역 내 수의방역에 실패할 경우, 우리나라에도 직접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에는 구제역, 고병원성 AI 등 국가재난형 가축전염병이 발생한 바 있으며, 다양한 인수공통전염병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성수의축산대학을 졸업하고 수의축산과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2011년 탈북한 조현(가명) 씨는 “광견병, 탄저, 결핵, 렙토스피라, 큐열, 구제역, 톡소플라즈마, 브루셀라 등 다양한 전염병이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남북한 수의학교류를 통해 북한의 수의방역 체계를 바로 잡고, 전염병 발생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건국대학교 북한축산연구소 역시 “남북한 기술자의 상호교류를 통한 기술전수 및 체계적 발전,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