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 중심이냐, 전염 온상이냐` 거점소독시설 개선방향은
우수 거점세척소독시설 현장견학에 전국 각지 가축방역관 모여
거점소독시설이 제대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시설기준과 소독효과 평가법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소독시설에 대한 운영비 지원, 세척시설 기반 확충, 생축 수송 차량 동선관리 등도 과제다.
17일 충북 음성 반석엘티씨에서 열린 우수 거점세척·소독시설 현장견학에는 제주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가축방역관 80여명이 모여 거점소독사업 개선방향을 모색했다.
소독시설 설치표준 없고 효과 여부 관리도 미흡
‘세척소독시설 유효성 평가 및 표준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과제를 총괄하고 있는 최농훈 건국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방역현장 소독의 문제점과 개선과제를 제언했다.
최 교수는 축산관련 시설에 소독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정작 어떻게 설치·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중구난방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축산차량의 출입구에 자동화된 소독설비를 설치한들 소독시간을 강제할 수 있도록 차단바가 없으면, 차량이 지나가버린 후 소독액만 홀로 분사되는 경우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소독약을 적정한 농도로 희석해 뿌리는 것도 문제다. 질병(병원체)별로 소독약의 권장희석배수가 설정돼 있지만, 현장의 소독조 자동화 설비가 희석배수를 제대로 맞추는지 여부는 관리대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최농훈 교수는 “한 축산시설의 자동 소독 설비를 불시 점검해보니 맹물을 뿌리고 있는 경우도 직접 목격했다”고 꼬집었다. 동일한 소독시설에서 시간대 별로 소독액의 농도를 점검해보니 권장희석배수 안팎으로 오락가락하는 현상도 포착됐다.
최농훈 교수는 “방역현장마다 경제적·환경적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 소독시설 모델을 표준화하여 강제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소독효과를 담보하기 위한 최소 기준과 평가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설 거점소독시설 늘리지만..지자체 `설치운영 가이드, 운영비 지원` 호소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상설 거점소독시설은 28개소다. 여기에 더해 35개소의 설치를 준비하고 있고, 올해 20여개소의 건립계획을 더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 모인 지자체 방역담당자들은 거점소독시설을 제대로 설치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권장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방역관계자는 “표준 설계도 같은 기준이 없이 각자 만들다 보니, 소독방식이나 형태가 다양하다”면서 “소독효과에 문제가 제기되면 책임소재마저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정부가 일선에 안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만들어진 곳도 운영비가 문제다. 설치비용에는 국비예산이 지원되지만 이후 운영은 지자체가 오롯이 부담해야 하는데, 월 500만원이 넘는 예산을 계속 투입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운영비 지원 필요성에 공감하며 예산확보를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기존 시설 보완비용, 운영비 지원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생축 실은 차량은 오히려 거점소독시설 피해야..세척 중요성 강조
일선 현장에서는 거점소독시설이 오히려 질병전파의 온상이 될 위험이 높다는 눈초리를 받고 있다.
특히 생축을 실은 가축수송차량은 소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전염원이 될 수 있어 별도의 동선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농훈 교수는 “도축장으로 향하는 생축수송차량을 소독한들 유기물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효과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지자체 방역관계자는 “세척만 잘해도 소독효과와 질병전파방지에 큰 도움이 된다”며 세척시설 지원 필요성을 제기했다.
농식품부 측도 이 같은 의견에 공감대를 보였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거점소독시설이 세척설비를 마련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면서 “도축장, 분뇨처리시설 등 주요 축산시설이 자체 세척소독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한편, 생축 수송 차량의 소독방식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거점소독시설을 포함한 소독 방식 개편에 대한 의견수렴을 지속해 오는 6월까지 마련될 AI·구제역 방역개선대책에 반영할 방침이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