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19] 울진군수로 지역발전에 힘쓴 `김용대 수의사`
한국수의인물사전 19. 김용대(金容大, 1923~1988). 부수의사로 공직 시작, 월성군 부군수, 경주시 부시장, 울진군수, 월성군수 역임. 대통령 표창 수상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자원(紫園), 자는 원구(元九)로, 1923년 5월 27일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에서 태어났다.
청도에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전라북도 이리공립농림학교 수의축산과에 진학하여 1942년에 학업을 마쳤다.
1946년 청도군 부수의사로 공직을 시작하여 월성군, 의성군 산업과장을 거치면서 시군 수의축산 행정을 수행해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68년 경상북도 식산국 축정계장, 임정계장을 거쳐 축정과장을 역임하면서 한우 육성, 초지 조성, 가축방역 사업 등 정부의 축산 진흥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전국 제일의 축산 웅도를 만드는 기초를 다졌다. 1975년 경상북도 월성군 부군수, 경주시 부시장, 1977년 울진군수, 월성군수로 농어촌 발전과 주민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하다 1981년 12월 21일 퇴직하였다.
청도군에서 근무할 때 할머니가 별세하여 어린 나이에 승중손(承重孫)으로 휴직해 상(喪)을 치르고 다시 복직함으로써 효손(孝孫)으로 주위의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공직자로서의 청렴결백함은 타의 모범이 되었고, 공직 생활 30여 년 동안 많은 상사를 보좌했지만, 황금에 물들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공직자의 모습으로 일관했다.
슬하에 4녀 3남을 두었으며, 가난한 선비처럼 생활하여 자녀들이 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퇴직 후 주위 동료들의 권유와 도움으로 사료공장 감사로 추대됐으나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타의에 의해 그만두었다.
그 후 여러 가지 문제로 병석에 눕게 되었고, 1988년 12월 16일 향년 65세로 타개해 동료들의 슬픔이 매우 컸다.
郡守紫園金公墓碣銘(군수자원김공묘갈명)
志學에 立論하여 近民의 뜻을 가슴에 세기고 泗洙의 大義를 欽慕하여 光復后 半世紀 어두운 한 時代에 敦尙士風의 篤行으로 이 땅의 禮度에 燦然한 光芒을 던지고 가신 분이 계시니 바로紫園이시다.
祖는 崇善殿參…奉 溪陽公 諱 昌字요 父 諱 濟斗 母 密城朴氏의 嗣子로 一九二三年 癸亥 五月 一十七日에 公은 이곳 書院洞에서 世間과의 緣을 이루었으니 大姓 金海金門의 鴻儒이며 紫溪節義의 標本인 濯纓先生의 十四世 孫이고 鄕堂의 長老인 玩松公 諱 憲章의 七世 孫이며
董安豊의 學風을 繼修한 士人 雲…谷公 諱 垽의 六世 孫이다.
公의 諱는 容大요 字는 元九 號는 紫園이니 人品이 剛直豪邁하여 所綠을 評함에 一毫의 偏角도 스스로 不許하였으며 聖夫子의 不問馬思想은 公의 信念이요 他人을 愛함이 仁이라 이는 곧 公의 指針이었다.
公은 一九四二年 裡里公立農林學校를 卒業 一九四三年 淸道郡農會 技手로 宧途에 入門後 廉平守官 四十年에 公의 赴任地마다 甘棠의 노래가 들려왔다.
一九七七年 蔚珍郡守 一九七九年 月城郡守 在職時 이룩한 蔚珍忠魂塔 建立 및 東國大學校 慶州大學 誘致 等은 公의 比重있는 業績에 屬한다.一九八一年 浩然히 歸去에 뜻을 두어 致仕하고 江湖를 택하였다.
公은 慶州盧氏와의 膝下에 三男四女를 두어 綱을 ‘잇게 하니’ 長男益均 次男 承均 三男 烘均이다. 女婿에 長女 順姬의 夫는張晉榮 次女順英의 夫는 權五銖 三女 恩英의 夫는 禹炳國 四女 順男의 夫는曺漢鐘이다.
一九八八年 戊辰 十二月 十六日에 棄世하시니 在世 六十六年이었다.
靑烏의 引導로 이곳 書院里後山 乾坐 地堂에 玄扃은 萬歲之長하리니 玉葉이 길이 昌盛하리로다. —「墓碑文」에서 移記 . 글쓴이_김진곤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